국가유산청(청장 허민)은 유네스코와 함께 7월 19일 오후 6시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개회식을 통해 국내 최초로 개최되는 위원회의 시작을 공식 선언했다. 이번 위원회는 7월 20일부터 29일까지 11일간 이어지며, 세계 각국 대표단과 전문가, 관계자들이 부산에 모여 세계유산 보존과 협력의 방향을 논의하게 된다.
개회식에는 이재명 대통령, 칼레드 엘에나니(Khaled El-Enany) 유네스코 사무총장, 허민 국가유산청장, 전재수 부산시장 등 주요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행사는 공식 접견과 사전 행사, 특별공연, 환영 리셉션 순으로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사전 행사로 세계유산위원회 개최를 기념해 조성된 ‘대한민국관(K-Heritage House)’을 둘러보며, 다음 날부터 본격적으로 세계인을 맞이할 준비 상황을 점검했다.
이번 개회식이 눈길을 끈 이유는 행사의 형식보다 그 안에 담긴 메시지에 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기본적으로 보존의 회의지만, 오늘의 세계에서 보존은 더 이상 과거를 박제하는 일이 아니다. 전쟁으로 파괴되는 유산, 기후변화로 훼손되는 자연유산, 관광과 개발 압력 속에 흔들리는 역사 공간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하는 현재형 질문이 그 중심에 놓여 있다. 부산에서 열리는 이번 회의는 한국이 단순한 참가국이 아니라 개최국으로서 바로 그 질문에 대해 책임 있게 응답하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
개회 기념 특별공연은 ‘하늘을 품은 지붕, 세대를 잇는 울림’을 주제로 펼쳐졌다. 경복궁 수문장의 개문 퍼포먼스로 시작한 공연은 일무, 신태평무, 강강술래 등 전통 무용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무대로 이어졌다.
이 구성은 상징적이었다. 한국의 국가유산이 박물관 안에 고정된 과거가 아니라, 오늘의 감각과 예술 안에서 다시 살아 움직일 수 있는 문화라는 점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공연 중간에 세계유산위원회의 공식 홍보대사인 지드래곤(G-Dragon)이 등장해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유산을 지키는 일은 과거를 보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미래의 평화를 만드는 일이다”라며, “부산에서 시작된 세계유산 보호를 향한 작은 마음들이 전 세계를 잇는 큰 평화로 피어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축사를 통해 “세계 각국 대표단을 환영하며, 갈등과 분열의 시대일수록 문화와 유산을 매개로 한 대화와 국제협력의 중요성이 커진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대한민국은 ‘문화의 힘’을 통해 세계를 잇고, 유네스코와 함께 평화와 협력을 선도하겠다”라는 의지를 밝혔다.
한국은 전쟁과 가난, 개발의 압축 성장 속에서 유산 보존과 문화정책을 동시에 고민해 온 경험을 가진 나라다. 그런 한국이 이제 국제회의 개최국으로서 유산과 평화, 협력의 가치를 말한다는 것은 큰 설득력이 있다.
칼레드 엘에나니 유네스코 사무총장 역시 세계유산위원회 개최와 세계유산협약에 대한 대한민국의 이바지와 노력에 감사를 표했다. 이 장면은 한국의 위상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보여 준다. 과거 국제협력의 지원을 받던 나라가 이제는 세계유산 체제를 함께 이끌고 이바지하는 나라로 성장했다는 점에서다.
개회식 다음 날인 7월 20일 오전 10시부터는 이병현 의장이 주재하는 본회의가 정식으로 시작된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개최국 대표 개회사를 통해 “위원회의 엠블럼인 종묘의 지붕처럼, 이번 위원회가 전 세계인을 한 지붕 아래 모아 글로벌 위기에 대응하며 세계유산협약이 나아갈 방향을 함께 고민하는 협력의 장이 되길 바란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허민 청장은 전쟁으로 인한 파괴와 기후변화에 따른 훼손 등 현재 세계유산이 직면한 위협을 환기하며, 과거 수몰 위기에 놓였던 이집트 아부심벨 신전을 보존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힘을 모았던 역사적 경험을 다시 상기시킬 계획이다. 이는 이번 회의가 단순한 의례적 만남이 아니라, 실제로 국제적 연대와 협력의 필요성을 다시 확인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유산은 국경 안에 있지만, 그것을 지키는 책임은 이제 국경 밖의 협력 없이는 완결되기 어렵다.
국가유산청과 유네스코는 이번 부산 개최를 기념해 대한민국의 세계유산 이야기를 담은 ‘세계유산 매거진’과 전 세계 세계유산 위치를 표시한 ‘세계유산 지도 특별판’을 국문, 영문, 불문 3개 언어로 제작해 공식 배포했다.
이는 회의가 전문가들만의 행사에 머무르지 않고, 더 많은 시민과 방문객이 세계유산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공공적 장치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유산 보호는 국제협약만으로 지속되지 않는다. 더 많은 사람이 알고, 관심을 두고, 가치에 공감할 때 비로소 보호의 기반도 단단해진다.
이번 세계유산위원회에는 7월 19일 오전 기준 155개국에서 2,929명이 참가 등록을 마쳤다. 국가유산청은 다양한 국가 대표단이 불편 없이 회의에 참여하고 체류할 수 있도록 ‘세계유산위원회 안내단’ 60명을 배치해 지원한다.
치열한 경쟁을 거쳐 선발된 대학(원)생들에게는 국제회의와 문화외교 현장을 몸소 체험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 역시 중요한 장면이다. 세계유산위원회는 국가 간 외교의 무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미래 세대가 유산과 국제협력의 현장을 배울 수 있는 교육의 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7월 20일부터 29일까지 벡스코 제1전시장에서는 다양한 기관이 전시와 행사, 공연을 통해 우리 국가유산의 매력을 선보이는 ‘대한민국관’이 운영된다. 국내외 방문객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이 공간은 K-컬처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다 입체적으로 보여 주는 장이 될 것이다.
오늘날 K-컬처가 세계적 주목을 받는다고 할 때, 그 원천에는 결국 오랜 시간 축적된 유산과 전통, 미감과 서사가 놓여 있다. 대한민국관은 바로 그 연결을 시각적으로 보여 주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국가유산청은 세계유산위원회 행사 기간 11일 동안 국내외 방문객에게 한국의 아름다운 국가유산과 한국적 가치를 오감으로 체험할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폐회까지 안전하고 성공적인 행사가 되도록 관계기관과 긴밀히 협력해 나갈 계획이다.
이번 부산 세계유산위원회는 국제회의 하나를 국내에 유치했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그것은 한국이 세계유산 담론의 중심 테이블에 앉았다는 사실, 그리고 유산 보존의 문제를 과거가 아닌 현재와 미래의 문제로 바라보겠다는 태도를 국제사회 앞에서 분명히 드러낸 계기라고 보기 때문이다.
세계유산은 돌과 나무, 지붕과 풍경의 이름이 아니라, 인류가 함께 지키겠다고 약속한 기억의 집합이다. 부산에서 시작된 이번 11일 동안의 여정은 그 약속이 얼마나 절실하고, 또 얼마나 협력이 필요한 일인지를 다시 보여 주는 시간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