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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위원회 개최 기념해 바다 위에 다시 뜬 ‘조선통신사선’

전통 선박과 남해안 해양 문화의 가치 함께 조명 한일 평화 교류의 상징을 살아 있는 해양 유산으로 재현

윤상필 기자
세계유산위원회 개최 기념해 바다 위에 다시 뜬 ‘조선통신사선’
화성 뱃놀이 축제에 참여한 조선통신사선(‘26.5.23.~5.25)

국가유산청 국립해양유산연구소(소장 이은석)는 부산 벡스코(BEXCO)에서 열리는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를 기념해 오는 7월 31일까지 고흥·여수·통영·부산에서 조선통신사선을 활용한 선상박물관과 항해 체험, 국악 공연 등을 운영한다. 

조선통신사선은 임진왜란 이후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약 200년 동안 총 12차례 일본에 파견된 평화사절단을 실어 나르던 국제교류선이다. 조선통신사는 본래 외교의 형식이었지만, 그 본질은 관계의 복원에 있었다. 

전쟁이라는 비극 이후 다시 바닷길을 열고 사절단을 보내는 일은 단순한 의례가 아니었다. 그것은 적대의 시간을 넘어 대화와 문화교류의 질서를 회복하려는 시도였고, 조선통신사선은 바로 그 역사적 전환을 실어 나른 배였다. 

그러므로 이 배를 다시 띄운다는 것은 단지 조선시대 선박을 복원하는 작업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평화가 어떻게 물리적 이동과 문화적 실천을 통해 이루어졌는지를 오늘의 감각으로 다시 증언하는 일에 가깝다.

역사는 책 속에만 남아 있을 때보다, 몸으로 다시 만날 수 있을 때 더 깊이 다가온다. 특히, 바다는 그렇다. 바다는 기록만으로는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공간이다. 바람의 결, 물길의 흐름, 배가 나아가는 속도와 방향, 해협을 건너는 긴장과 설렘은 실제 항해의 감각 속에서야 비로소 살아난다. 

국가유산청 국립해양유산연구소가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개최를 기념해 고흥·여수·통영·부산의 바다에서 조선통신사선을 활용한 선상박물관과 항해 체험을 운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선통신사선은 단지 옛 배 한 척이 아니라, 전쟁 이후 평화를 건너갔던 사절의 길이자 한일 문화교류의 상징이며, 오늘의 우리에게 해양 유산을 어떻게 살아 있는 방식으로 전할 것인가를 묻는 매개이기 때문이다.

국립해양유산연구소는 2018년 전통선박 재현연구 사업의 하나로 조선통신사선을 실물 크기와 동일하게 재현했고, 이를 바탕으로 부산 앞바다에서 출발해 2023년 쓰시마, 2024년 시모노세키, 2025년 오사카까지 과거 평화사절단이 오갔던 한일 뱃길을 차례로 재현해 왔다. 

이 성과는 매우 상징적이다. 해양 유산은 흔히 박물관 안의 모형이나 문헌 속 정보로만 소비되기 쉽지만, 조선통신사선은 실제 항로를 따라 움직임으로써 유산을 정적인 대상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경험으로 바꾸었다. 유산은 보존되어야 하지만, 때로는 다시 움직일 때 더 큰 설득력을 가진다.

이번 행사에서는 선상박물관이 운영된다. 방문객들은 학예연구사의 설명과 함께 영상, 회화, 사진, 지도 등 여러 자료를 통해 조선통신사선의 뱃길 재현 성과와 전통 한선 기술을 살펴볼 수 있다. 여기에 판소리와 사물놀이 등 국악 공연까지 더해져, 관람객은 단순히 배를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소리와 이야기, 공간의 분위기까지 함께 경험하게 된다. 

조선통신사선은 원래 사람과 물자만 실어 나른 것이 아니라, 문화와 예술, 사상과 외교의 상징까지 함께 실어 나르던 배였다. 선상박물관과 국악 공연의 결합은 바로 이와 같은 복합적 의미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통신사선은 7월 8일 목포를 출항해 첫 목적지인 고흥으로 향한다. 고흥에서는 7월 11일부터 13일까지 세계유산 잠정목록인 ‘한국의 갯벌 2단계’에 포함된 고흥 갯벌과 사도해전의 주요 해역을 따라 항해하며 지역 해양 유산을 소개한다. 

특히, 녹동항에서는 세계유산위원회 개최를 기념하는 드론쇼와 해상 불꽃쇼도 열린다. 이 장면은 단지 축제의 볼거리만은 아니다. 과거의 배가 오늘의 기술과 만나 밤하늘과 바다 위에서 새로운 문화경관을 만들어 내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는 유산이 과거를 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현재의 문화콘텐츠와 결합해 새로운 관람 경험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어 여수에서는 여수 갯벌과 전라좌수영 등 이충무공 관련 유산을 배경으로 해양 문화 유적지를 탐방하고, 통영에서는 한산도대첩의 주요 해역을 따라 항해하며 이순신 장군의 해전사와 해양 문화의 가치를 이해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조선통신사선 행사가 단지 통신사 역사 하나만을 좇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남해안 각 지역이 품고 있는 해양 전투사, 갯벌 문화, 지역 유산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바다의 기억을 더 넓게 읽게 만든다. 즉, 한 척의 배를 중심으로 한국 남해안이 지닌 복합적인 해양 문화의 층위가 함께 드러나는 구조다.

부산에서는 7월 25일부터 26일까지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 대표단 등 국내외 주요 인사와 사전 모집된 시민들을 대상으로 행사가 열린다. 선상박물관과 국악 공연, 전통 단청 등 우리 전통 조선 기술의 우수성을 소개하고, 직접 조선통신사선을 타고 동백섬 또는 오륙도를 방문할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이 일정은 특히 국제적 의미가 있다. 세계유산위원회라는 글로벌 무대에서 조선통신사선을 단순 전시품이 아니라, 실제 체험할 수 있는 해양 유산으로 선보인다는 것은 한국의 전통 선박 문화와 해양 외교의 역사를 더욱 입체적으로 국제사회에 알리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세계유산은 돌과 건축물만이 아니라, 이동과 교류, 평화와 기술의 기억까지 포함할 수 있다는 메시지도 함께 전한다.

이번 행사에는 데브시스터즈의 ‘쿠키런’ 캐릭터를 활용한 포토존도 마련된다. 이를 두고 가볍게 볼 수도 있지만, 사실 이런 장치는 유산의 대중화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통 유산이 더 많은 세대에게 다가가려면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친숙한 캐릭터와 결합해 진입 장벽을 낮추고, 어린이와 가족 단위 관람객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유산의 무게를 가볍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이들이 그 의미에 접근할 수 있도록 새로운 언어를 제공하는 일이다.

국립해양유산연구소는 이번 행사를 통해 조선통신사선을 살아 있는 해양문화유산으로 활용하고, 우리 전통 선박과 해양문화유산의 역사적 가치와 세계적 의미를 널리 확산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말은 조선통신사선이 더 이상 복원 완료된 프로젝트가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활용되고 해석되어야 할 공공유산이라는 뜻이다. 

유산은 보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람들이 그것을 경험하고, 이해하고, 자기 시대의 언어로 다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오래 살아남는다.

이번 행사는 한 척의 배를 띄우는 일이 아니라, 평화의 기억을 다시 항해시키는 일이다. 조선통신사선이 오갔던 길은 과거의 외교로 끝난 항로가 아니다. 오늘의 우리에게도 바다는 대립의 경계가 아니라, 교류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길이다. 고흥과 여수, 통영과 부산의 바다 위에 다시 떠오른 조선통신사선은 그래서 단지 전통 선박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 평화와 해양 유산을 함께 실은 살아 있는 상징으로 보인다.

윤상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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