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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코리아 뉴스]
타임즈코리아 뉴스추천뉴스2026. 3. 18. 오후 3:52:41

봄꽃 따라 걷는 낙선재 후원, 특별해설로 만나다

궁궐은 보는 곳을 넘어, 천천히 읽는 곳이어야 한다 봄꽃 따라 걷는 낙선재 후원, 특별해설이 일깨우는 문화유산 향유의 방식

최대식 기자
봄꽃 따라 걷는 낙선재 후원, 특별해설로 만나다
창덕궁 낙선재 권역 전경

궁궐은 늘 많은 사람을 맞이하지만, 모든 궁궐이 같은 깊이로 읽히는 것은 아니다. 대개 관람은 전각의 이름을 확인하고, 건물의 외형을 둘러보고, 사진 한 장을 남기는 데서 그친다. 그러나 진정한 문화유산 향유는 눈으로 ‘보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그 공간에 스민 시간과 사람의 이야기를 함께 ‘읽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런 점에서 창덕궁관리소가 마련한 특별 해설 프로그램 ‘봄을 품은 낙선재’는 계절 행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궁궐을 풍경으로 소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공간과 역사, 감정과 기억을 함께 음미하도록 이끄는 조용하지만, 품격 있는 시도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창덕궁관리소(소장 오택근)는 오는 3월 27일부터 4월 2일까지 하루 두 차례, 오전 10시와 오후 2시 30분에 특별해설 프로그램 ‘봄을 품은 낙선재’를 운영한다. 이번 프로그램은 평소 관람이 제한되었던 낙선재 후원 일대를 중심으로 진행되며, 고즈넉한 궁궐 뒤뜰을 거닐며 역사와 건축, 계절의 정취를 함께 듣는 방식으로 마련됐다.

창덕궁 깊숙한 곳에 자리한 낙선재 권역은 낙선재, 석복헌, 수강재로 이루어진 생활공간이다. 1847년 헌종이 서재이자 휴식 공간으로 지은 낙선재를 중심으로, 이듬해 후궁 경빈 김씨의 처소인 석복헌과 순원왕후의 처소인 수강재가 더해지며 하나의 권역이 완성되었다. 이곳은 화려함보다 절제미가 두드러지는 공간이며, 헌종과 경빈 김씨의 사랑 이야기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동시에 대한제국 마지막 황실 가족들이 1989년까지 머물렀던 장소라는 점에서, 조선의 궁궐을 넘어 근현대 황실사의 기억까지 품은 현장이기도 하다.

 

지난해 ‘봄을 품은 낙선재’ 행사

 

‘봄을 품은 낙선재’는 단순히 공간을 설명하는 해설 프로그램이 아니다. 국가유산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화계(花階·계단식으로 높낮이를 두고 만든 전통 화단)의 봄꽃과 정자, 꽃담을 차례로 감상하며 낙선재의 역사적 의미와 건축적 특징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도록 구성한 프로그램이다. 

특히, 계단식 화단 위로 번지는 봄의 빛과 꽃의 흐름은 이 시기에만 경험할 수 있는 낙선재 후원의 특별한 정취를 선사한다. 참여 대상은 중학생 이상 일반인이며, 회당 최대 24명까지 참여할 수 있다. 프로그램은 약 1시간 동안 무료로 진행되며, 참가 신청은 창덕궁관리소 누리집(royal.khs.go.kr/cdg)을 통해 3월 19일부터 22일까지 받는다.

이 프로그램이 주목할 만한 이유는 분명하다. 오늘날 문화유산은 더 이상 ‘보존’만으로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보존은 기본이다. 그러나 보존된 유산이 현재의 사람들과 어떤 방식으로 만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는다면, 문화유산은 점차 일상과 멀어진다. 특히, 궁궐은 국가적 상징성과 건축적 가치가 큰 만큼, 이를 살아 있는 문화 경험으로 전환하는 섬세한 해설과 프로그램이 중요하다. 

낙선재 후원 특별해설은 바로 그 접점을 잘 보여준다. 낙선재는 다른 궁궐 전각들에 비해 유독 조용하다. 웅장한 권위를 내세우기보다, 사람이 실제로 머물고 쉬고 늙어 갔던 시간의 결을 더 많이 품고 있다. 그래서 이곳은 단순한 궁궐 건축이 아니라, 생활의 공간이자 기억의 공간으로 읽혀야 한다. 

봄꽃이 피어난 화계와 정자, 꽃담을 따라 걷는 일은 결국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 길 위에서 한 시대의 미감, 한 왕실의 사적인 정서, 한 공간의 절제된 품격을 다시 배우게 된다.

오늘의 관람 문화는 종종 속도에 끌려간다. 더 많이 보고, 더 빨리 이동하고, 더 짧게 소비하는 방식이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궁궐은 본래 그런 속도를 견디는 공간이 아니다. 궁궐은 천천히 보아야 하고, 가만히 머물러야 하며, 설명을 들을 때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내는 장소다. 특히, 낙선재처럼 절제와 여백의 미가 중요한 공간은 해설 없이는 그 진가를 충분히 느끼기 어렵다. 이번 프로그램은 그런 점에서 단순한 계절 이벤트가 아니라, 궁궐을 대하는 감상의 태도를 바꾸는 하나의 제안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유산은 멀리 있는 과거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의 사람이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시 살아나는 시간이다. 낙선재 후원은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지만, 봄꽃과 해설이 더해질 때 우리는 비로소 그 공간을 새롭게 만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장소 그 자체만이 아니라, 그 장소를 경험하게 하는 방식이다.

‘봄을 품은 낙선재’는 바로 그 점을 잘 보여준다. 궁궐은 거대한 역사만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조용한 뒤뜰의 계절과 한 사람의 삶, 한 시대의 미감과 기억까지 함께 품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특별해설은 봄꽃을 감상하는 프로그램이면서 동시에, 궁궐을 더 천천히, 더 깊이 읽어 보자는 문화적 권유이기도 하다. 궁궐은 보는 곳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읽는 곳이어야 한다. 그리고 낙선재의 봄은, 그 읽기의 가장 고요하고도 아름다운 시작이 될 수 있다.

최대식
최대식 기자
cds@timesof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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