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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코리아 뉴스]
타임즈코리아 뉴스추천뉴스2026. 3. 20. 오후 12:17:47

피아니스트 임현정, 13년 만의 베토벤 소나타 리사이틀

작품 나열이 아니라, 서사로 프로그램을 설계했다 임현정의 강점은 ‘재현’이 아니라, ‘재발견’에 있다

최대식 기자
피아니스트 임현정, 13년 만의 베토벤 소나타 리사이틀
피아니스트 임현정

클래식 음악은 자주 위대한 유산으로 불린다. 그러나 유산은 반복되는 순간 쉽게 박제된다. 너무 자주 연주된 작품은 오히려 낯섦을 잃고,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감동의 밀도마저 얇아지기 쉽다. 그래서 진정한 연주자는 악보를 재현하는 사람이 아니라, 너무 많이 들어 익숙해진 작품 안에서 다시 생명력을 깨우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피아니스트 임현정이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선보일 베토벤 소나타 리사이틀 ‘임현정의 베토벤 소나타 시리즈 - 영웅(Heroes)’은 단순한 독주회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것은 잘 알려진 고전을 다시 낯설게, 다시 뜨겁게 되살릴 수 있는가에 대한 한 예술가의 대답처럼 보인다.

임현정은 오는 3월 29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베토벤 소나타만으로 이루어진 피아노 리사이틀을 연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프로그램 전체를 베토벤 소나타로만 구성하는 무대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소나타 8번 ‘비창’, 14번 ‘월광’, 12번, 23번 ‘열정’을 통해 영웅의 탄생과 고뇌, 죽음의 그림자와 격렬한 투쟁이라는 서사를 관통하는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임현정의 베토벤 소나타 시리즈-영웅(Heroes)’ 리사이틀이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개최된다

 

임현정은 이미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로 널리 알려져 있다. EMI Classics에서 녹음한 베토벤 소나타 전곡 앨범은 데뷔 앨범이 빌보드 클래식 종합차트 1위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아이튠즈 차트 1위라는 이력 역시 그의 이름 앞에 붙는 상징적 수식어가 되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기록 그 자체보다, 그 기록을 가능하게 한 해석의 힘이다. 여러 해외 평론은 그의 연주를 두고 위험할 정도로 독창적이고, 익숙한 음악을 처음 듣는 것처럼 되살려낸다고 평해 왔다. 그의 베토벤 연주는 안전하게 정리된 고전이 아니라, 연주를 듣는 그 순간 다시 불붙어 올라 살아 있는 내면의 기록으로 들린다.

이번 리사이틀의 프로그램은 이런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비창’은 비극적 서정과 긴장의 문을 열고, ‘월광’은 고요 속에 감춰진 심연을 드러낸다. 이어 소나타 12번은 장송 행진곡을 통해 영웅의 죽음 혹은 몰락을 암시하며, 마지막 ‘열정’은 운명과 충돌하는 격렬한 에너지로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이 네 작품은 단순히 유명한 소나타들을 나열한 구성이 아니다. 하나의 인간이 세계와 맞서고, 흔들리고, 끝내 투쟁하는 정신의 여정을 음악으로 배열한 서사적 설계에 가깝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임현정의 공연은 단순한 명곡 연주회와 거리를 둔다. 

베토벤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이름이지만, 익숙한 만큼 오히려 상투화되기 쉽다. ‘비창’과 ‘월광’, ‘열정’은 너무 자주 연주되어 작품의 이름만 남고, 내면의 절박함은 흐려지기 쉽다. 그러나 임현정은 오랫동안 베토벤을 해석해 온 자신의 철학을 통해, 이 작품들을 다시, 거칠고도 고독한 인간의 기록으로 되돌리려고 한다. 

그가 말한 것처럼 베토벤의 소나타는 천재성과 고뇌, 삶의 조각이 고스란히 반영된 치열한 내면의 일기장이다. 그렇다면 이를 연주하는 일은 단순한 기교의 재현이 아니라, 한 인간의 영혼이 흔들린 자리를 오늘의 청중 앞에 다시 열어 보이는 작업이어야 한다.

 

 

클래식 음악계에서 임현정이 특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늘 정형화된 틀 바깥에서 음악을 밀어붙여 왔다. 피아니스트에 머물지 않고 지휘자, 음악감독, 공연기획자로 활동해 왔고, 오케스트라 창단과 페스티벌 기획, 즉흥성과 실험성을 앞세운 공연 형식을 통해 고전음악의 경계를 넓혀 왔다. 

전통적인 레퍼토리를 다루면서도 결코 전통적인 태도에 안주하지 않는 예술가라는 점에서, 그의 베토벤은 단순히 ‘잘하는 연주’가 아니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연주’로 받아들여진다. 오늘의 청중이 클래식 음악에 기대하는 것도 바로 그런 지점일 것이다. 

완벽하게 정리된 소리만으로는 오래 남는 울림이 생기지 않는다. 물론, 기술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청중은 이제 악보 너머의 해석, 익숙한 작품을 다시 보게 만드는 시선, 연주자만의 존재를 통해 비로소 음악이 다시 태어나는 순간을 원한다. 

임현정의 연주가 여러 평론가에게서 “익숙한 곡을 처음 듣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평가받아 온 것도, 그의 음악이 단순히 잘 정리된 해석이 아니라, 새로운 차원에서 청중을 흔드는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에서 ‘영웅’이라는 제목을 택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오늘날 영웅은 거대한 승리의 상징이라기보다, 상처와 고독을 품은 채 자기 운명과 싸우는 존재에 가깝다. 베토벤의 음악 역시 그렇다. 그의 영웅성은 화려한 승리의 외침보다, 고독과 균열을 통과하면서도 끝내 주저앉지 않는 정신에서 나온다. 

임현정이 이 서사를 자신의 해석으로 무대 위에 세우려 한다면, 이번 리사이틀은 곧 베토벤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사람들은 클래식 음악을 흔히 과거의 예술로 오해한다. 그러나 진정한 고전은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해석을 통해 현재로 다시 건너온다. 같은 악보를 앞에 두고도 누군가는 그것을 박제된 명작으로 남기고, 누군가는 오늘의 심장으로 되살린다. 차이는 연주자가 그 음악 안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이야기하는가에 달려 있다.

임현정의 이번 베토벤 리사이틀은 바로 그 물음을 정면으로 끌어안는 무대처럼 보인다. 이것은 유명한 작품들을 안전하게 연주하는 밤이 아니라, 베토벤이라는 거대한 내면과 다시 정면으로 마주하는 밤이 될 가능성이 크다. 영웅은 어쩌면 승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의 고독을 끝까지 음악으로 밀고 가는 사람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번 무대는 베토벤의 영웅서사이면서 동시에, 한 예술가가 자신의 해석으로 그 서사를 다시 감당해 내는 또 하나의 영웅담이 될 수 있다.

고전은 반복될수록 낡아지는 것이 아니라, 누가 어떻게 다시 불러내느냐에 따라 새로워진다. 3월 29일 예술의전당에서 울려 퍼질 임현정의 베토벤은 그 오래된 진실을 다시 증명하려 한다. 이날 청중이 만나게 될 것은 단지 소나타 몇 곡이 아니라, 고독과 투쟁, 침묵과 폭발을 건너는 한 인간 정신의 드라마일 것이다. 

최대식
최대식 기자
cds@timesof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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