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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코리아 뉴스]
타임즈코리아 뉴스추천특집2026. 3. 23. 오후 2:10:24

특허의 시간표를 바꾸지 못하면 기술의 미래도 늦어진다

심사 속도를 기업의 성장 속도에 맞추겠다 특허제도를 고객 친화적으로 바꾸려는 시도다

최대식 기자
특허의 시간표를 바꾸지 못하면 기술의 미래도 늦어진다
김선용 지식재산처장이 정부대전청사에서 특허 심사 서비스 혁신방안 사전 브리핑을 하고 있다

기술혁신의 시대라고 말하지만, 정작 기술이 시장에서 제때 평가받지 못한다면 그 혁신은 절반만 실현된 것이나 다름없다. 연구실에서 만들어진 아이디어가 특허로 보호받지 못하고, 창업기업의 기술이 심사 지연 속에서 골든타임을 놓치며, 해외 시장 진출보다 국내 절차 대응에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한다면, 그것은 기술의 부족이 아니라 제도의 지체가 만든 손실이다. 

이런 점에서 지식재산처가 내놓은 「특허 심사 서비스 혁신방안」은 단순한 행정 개선안을 넘어, 한국 산업이 ‘양적 특허 강국’에서 ‘질적 지식 재산 강국’으로 넘어갈 수 있는지를 가늠할 분기점이라고 할 만하다.

지식재산처는 3월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9차 국가지식재산위원회에서 특허 심사행정의 ‘보이지 않는 규제’를 걷어내는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핵심은 분명하다. 2029년까지 특허 심사 대기기간을 현행 15개월에서 10개월 이내로 줄이고, 최종 심사 종결 기간도 24개월에서 16개월 이내로 단축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첨단기술 분야의 모든 창업기업을 대상으로 1개월 내 심사 결과를 제공하는 초고속심사 트랙을 확대하고, 특허 품질까지 끌어올려 국내기업의 해외출원 비중을 현재 50% 수준에서 80% 이상으로 높이겠다는 청사진도 함께 제시했다.

이번 방안은 우리나라가 이미 출원 규모 세계 4위의 특허 강국이지만, 심사 속도와 품질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의 요구를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기술은 빠르게 움직이는데 심사는 느리고, 출원은 많지만, 세계시장에서 통하는 특허의 완성도는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 결과 많은 혁신 기술이 시장에서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는 특허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현장의 불만이 누적됐다.

이 점에서 이번 혁신방안은 중요한 방향 전환을 보여 준다. 정부는 특허를 단순히 출원 건수로 평가하는 시대에서 벗어나, 기술의 시장가치를 실제로 보호하고 수익화할 수 있는 권리 체계로 바꾸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다시 말해 특허를 ‘행정 절차의 결과물’이 아니라, ‘성장의 자산’으로 재정의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이야말로 이번 발표에서 말하는 ‘지식 재산 기반의 진짜 성장’이 지향하는 본질일 것이다.

이번 방안의 첫 번째 축은 심사 속도 혁신이다. 창업기업과 벤처기업에게 시간은 자본만큼 중요하다. 기술이 특허로 확정되기 전에 시장이 먼저 변해 버리거나 경쟁사가 유사 기술을 선점하면, 기업은 아이디어를 갖고도 기회를 잃는다. 특히 해외 진출을 준비하는 기업으로서는 국내 심사의 지연이 글로벌 전략 전체를 늦출 수 있다. 

따라서 심사 대기기간을 10개월 이내로 줄이겠다는 목표는 단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생존과 확장의 시간을 다시 맞추겠다는 뜻으로 읽어야 한다. 이를 위해 특허심사관의 단계적 대규모 증원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은 결국 사람과 시스템에 대한 공공투자가 기술 경쟁력 확보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두 번째 축은 특허 품질 혁신이다. 속도만 빠른 심사는 충분하지 않다. 심사가 서둘러 끝나더라도 권리 범위가 지나치게 좁거나, 시장에서 활용도가 낮은 특허라면 기업에는 실질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식재산처가 출원 단계부터 신기술 분야별 가이드를 제공하고, 보수적인 심사 관행을 손질하며, 유럽 선진 모델인 ‘3인 협의 심사’를 확대하겠다고 한 것은 그래서 의미가 크다. 

이는 특허를 단순히 등록해 주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업화와 권리 보호에 도움이 되는 형태로 설계하겠다는 뜻이다. 특허 품질관리 역시 사후 점검이 아니라, 결과 통지 전 점검하는 ‘예방적 품질관리’ 체계로 바꾸겠다고 한 점은 불필요한 절차 지연을 줄이고 기업의 시간과 비용을 아끼겠다는 현실적 접근으로 평가할 만하다.

세 번째 축은 고객 친화적 시스템 구축이다. 이 부분은 어쩌면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자주 간과되는 영역이다. 특허제도는 기술자와 기업이 이용하는 제도이지, 행정기관만을 위한 제도가 아니다. 그런데 그동안 출원인으로서는 복잡한 절차와 일방적 심사, 변화에 느린 법과 제도가 큰 장벽처럼 작용해 온 것이 사실이다. 

심사관과 출원인이 소통하며 최적의 권리 범위를 함께 설계하는 ‘적극 심사’를 활성화하고, 기업·연구소·대학과 연계해 심사관의 최신기술 이해도를 높이겠다는 구상은 특허제도를 보다 현장 친화적으로 바꾸려는 시도다. AI와 소프트웨어 관련 발명을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특허법조약 가입을 추진하겠다는 계획 역시 급변하는 기술 환경 속에서 제도의 국제적 정합성과 실효성을 높이려는 조치로 읽힌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이번 방안이 단순한 심사행정 개혁을 넘어 산업 경쟁력과 무역수지 문제까지 연결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국내기업의 해외출원 비중을 80%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만성적자에 시달려온 산업재산권 무역수지를 흑자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는 매우 상징적인 대목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해외 기술에 로열티를 지불하는 데 익숙한 구조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우리 기술이 해외에서 보호받고, 수익을 만들어 내며, 로열티를 벌어들이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분명히 드러난다. 결국 특허는 기술의 방어막일 뿐 아니라, 국가 경제의 수익 구조를 바꾸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과제도 있다. 심사관 증원만으로 곧바로 세계 최고 수준의 심사 속도와 품질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AI, 바이오, 소프트웨어, 융복합 기술처럼 복잡한 영역에서는 심사 전문성 자체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또한, 초고속심사가 확대될수록 속도와 품질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도 중요한 문제다. 기업이 체감하는 변화는 발표가 아니라, 실제 처리 속도, 심사 결과의 완성도, 해외 권리화의 실효성에서 판단될 것이다. 따라서 이번 방안의 진정한 성패는 선언의 크기가 아니라 실행의 정밀함에 달려 있다.

그런데도 이번 발표는 분명 필요한 방향을 제시한다. 기술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인 시대에 특허 심사는 더 이상 뒤늦은 행정 절차가 되어서는 안 된다. 좋은 기술이 제때 보호받고, 충분한 권리 범위를 인정받으며, 세계시장에서 수익으로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할 때 특허는 종이 위 권리가 아니라, 실제 성장의 동력이 된다.

기술의 시대에 뒤처지는 것은 연구개발만이 아니다. 제도가 늦으면 기술도 늦어진다. 그래서 특허 심사 혁신은 단지 특허청이나 출원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경제가 얼마나 빠르고 정교하게 혁신을 시장가치로 바꿀 수 있는가의 문제다.

이번 방안이 진정한 의미가 있으려면 국민과 기업이 심사 속도와 품질 모두에서 실제 변화를 체감해야 한다. 기술은 이미 앞서가고 있다. 이제 제도가 그 뒤를 허둥지둥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뿌리내릴 수 있는 토양이 되어야 한다. 좋은 특허는 좋은 기술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좋은 제도의 결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결국 ‘진짜 성장’은 구호가 아니라 구조에서 나온다. 특허의 시간표를 바꾸고, 심사의 품질을 높이고, 권리의 가치를 세계시장으로 확장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한국의 기술은 숫자를 넘어 힘이 된다. 이번 혁신이 그 시작점이 될 수 있을지, 이제 중요한 것은 실행이다.

최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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