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보통 모내기는 5월 하순에서 6월 초순 사이에 이루어진다. 예전에는 절기상 소만(小滿)을 지나며 본격적인 모내기가 시작되곤 했다.
소만은 ‘만물이 자라 가득 찬다’는 뜻을 지닌 절기로, 산과 들의 초목이 짙은 생명력으로 무르익는 시기다. 이 무렵의 논은 단순한 농사터가 아니라, 한 해의 희망을 심는 자리처럼 여겨졌다.
불과 40~50년 전만 해도 모내기 시기가 되면 농촌은 가장 분주했다. “고양이 손도 빌린다”라는 말이 나올 만큼 온 마을이 들썩였고, 학생과 공무원들까지 농촌 일손 돕기에 나서곤 했다.
한 해의 식량을 좌우하는 중요한 작업이었기에, 논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지금보다 더 절박하면서도 간절했다. 풍수해 없이 모가 잘 자라 풍년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 절실함은 그때가 훨씬 더 강했을 것이다.
모내기 무렵이면 동네 아낙들이 모여 일꾼들의 식사를 준비하느라고 구슬땀을 흘렸다. 평소에는 쉽게 볼 수 없던 넉넉한 음식이 차려졌고, 들판 한쪽에서 벌어지는 밥시간은 일의 고단함 속에서도 웃음이 오가는 작은 잔치 같았다.
논에서는 모를 심고, 마을에서는 밥을 짓고, 모두가 한 철의 농사를 위해 마음과 손을 보탰다. 그 풍경은 단순히 농번기의 모습이 아니라, 한 공동체가 함께 살아가던 방식의 기억이기도 하다.
지금은 대부분의 모내기를 이양기가 대신한다. 예전처럼 허리를 굽혀 한 줄 한 줄 손으로 모를 심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기계화 덕분에 농사는 훨씬 수월해졌다. 이것은 분명 생활의 발전이자 하나의 혁명이다. 그만큼 우리 삶이 풍요로워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기억 속 모내기 때는 지금보다 더 느리고, 더 따뜻하고, 더 사람 냄새가 짙었던 것으로 남아 있다.
초여름 햇살 아래 물 가득한 논에 모가 반듯하게 꽂히던 장면, 흙 묻은 발로 논둑을 오가던 사람들, 바쁜 가운데서도 서로를 챙기던 손길들을 이제는 볼 수가 없다. 그 풍경 속에는 단순한 노동을 넘어 함께 살아가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 시절은 가고 없지만, 그때의 넉넉한 온기만큼은 내 기억 속에서 오래도록 푸르게 자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