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시대의 식물 주권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교실에서
어떤 씨앗을 선택하고 어떤 데이터를 쌓느냐에서 시작된다.
우주를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먼저 로켓과 인공위성, 탐사선과 우주정거장을 떠올린다. 그러나 우주 시대를 실질적으로 가능하게 만드는 질문은 때로 훨씬 더 작고 구체적이다. 사람은 우주에서 무엇을 먹을 것인가, 어떤 식물을 기를 수 있는가, 극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생명 자원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들이다.
이처럼 우주 생존의 기반을 이루는 식물 자원에 관해 관심이 커지는 가운데, 산림청 국립수목원(원장 임영석)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페어차일드 열대식물원이 공동 운영하는 ‘GBE(Growing Beyond Earth)’를 아시아 최초로 도입해 한국형 모델인 ‘K-GBE’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는 단순한 교육 프로그램의 출발을 넘어, 우주 시대 식물 자원 전략과 시민과학, 미래 세대 교육이 만나는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국립수목원은 이번 프로젝트의 파트너로 양구교육지원청과 협력해 강원외국어고등학교를 시범학교로 선정했다. 이를 위해 학교를 직접 방문해 NASA의 연구 프로토콜이 적용된 식물 재배 시스템을 전달하고, 참여 학생들과 향후 운영 방향을 논의하는 간담회도 진행했다. 이번 사업은 단순한 행사성 체험이 아니라, 실제 실험 장치와 연구 절차를 기반으로 학생들이 장기간 참여하게 되는 구조로 출발했다.
GBE는 학생들이 국제우주정거장(ISS·International Space Station, 여러 나라가 함께 만든, 지구 궤도를 돌며 우주 실험과 생활 연구를 하는 우주 연구 기지)의 식물 재배 환경을 모사한 장치에서 직접 식물을 키우고 데이터를 수집하는 NASA 연계 교육·연구 프로그램이다. 페어차일드 열대식물원은 이 프로그램이 NASA 과학자들과 연계해 교사와 학생들이 실험을 수행하고 결과를 NASA와 공유하는 시민과학 프로젝트라고 설명한다.
현재 전 세계 11개국, 약 400개 학교가 참여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은 이번에 아시아 국가로는 처음 합류하게 됐다. 이 사실만으로도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한 국내 시범사업을 넘어, 한국의 식물 연구와 교육 현장이 국제 우주식물 연구 네트워크와 처음으로 직접 연결됐다는 의미가 있다.
이번 ‘K-GBE’의 가장 큰 차별성은 실험 대상이 한국 고유의 자생식물이라는 점이다. 국립수목원은 그동안 축적해 온 민속식물 연구 데이터를 바탕으로, 식용·약용 가치가 높고 극한 환경 적응력이 우수한 자생식물 후보군을 선발해 학생들과 함께 우주 환경에서의 재배 가능성을 검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주식물 연구가 단순히 외국에서 이미 알려진 작물을 따라가는 데 머무르지 않고, 한국이 오랫동안 보유해 온 자생식물 자원을 미래 전략 자원으로 다시 해석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세 가지 방향에서 의미가 크다. 첫째는 과학 연구다. 학생들이 실제 생육 데이터를 기록하고 분석하며, 식물이 폐쇄적이고 제한된 환경에서 어떻게 자라는지 탐구한다. 둘째는 교육이다. 국립수목원은 이번 프로젝트가 청소년에게 수준 높은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교육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셋째는 국가 전략 자원 차원이다. 학생들이 기록한 생육 데이터와 분석 결과는 NASA 연구 데이터베이스와 연계돼 향후 우리나라 미래 우주식물 선정의 기초 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라고 한다. 즉, 학교 교실에서의 실험이 곧 국제 연구 데이터의 일부가 되고, 그것이 다시 국가 식물주권과 미래 우주전략의 기초 정보로 이어지는 구조다.
‘시민과학’이라는 개념도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민과학은 전문가만이 과학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시민이나 학생이 직접 관찰과 기록, 실험과 데이터 수집에 참여하면서 과학 지식 생산에 이바지하는 방식이다. GBE는 바로 그 대표 사례다.
학생들은 교실에서 식물을 키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주 환경과 비슷하게 만든 실험 장치에서 얻은 자료를 국제 연구에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한다. 과학 교육이 교과서의 정답을 배우는 일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정답이 없는 질문을 함께 탐구하는 과정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국립수목원이 이 프로젝트를 통해 ‘식물주권’이라는 문제를 새로운 차원에서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식물주권은 단순히 종자를 많이 보유하는 문제를 넘어, 어떤 식물 자원을 누가 연구하고 보존하며 미래 산업과 전략 자원으로 활용할 것인가와 연결된다.
특히, 기후위기와 식량안보, 우주 개발이 동시에 중요한 시대에는 극한 환경에서 생존 가능성이 높은 식물 자원의 가치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 자생식물 가운데 식용성과 약용성, 환경 적응성이 높은 종들을 우주 환경 관점에서 다시 검토한다는 것은 전통적인 식물 연구를 미래 전략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임영석 국립수목원장은 “우리의 소중한 자생식물이 지구를 넘어 미래 우주 시대의 핵심 자원으로 주목받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라며, “이번 시범운영을 시작으로 참여 학교를 확대하고, 시민과학을 통한 자생식물 가치 확산에 앞장서겠다”라고 밝혔다.
이번 ‘K-GBE’ 프로젝트가 보여 주는 것은 우주 시대의 경쟁력은 첨단 기술의 속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생명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지, 그 자원을 어떻게 연구하고 검증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을 다음 세대 교육과 어떻게 연결하는지도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는 우리나라 자생식물을 미래 우주 시대에 쓸 수 있는 중요한 자원으로 새롭게 바라보게 했고, 그 시작을 학생들의 직접적인 실험과 기록에서 출발하게 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