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4월 7일 별세한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에게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했다. 국민훈장은 국가 발전에 이바지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정부포상으로, 정부는 고인이 제주올레 길을 통해 우리나라 걷기 여행문화를 확산하고 지속 가능한 관광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높이 평가해 이번 추서를 결정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최휘영 장관은 18일 오후 제주 서귀포에 있는 제주올레 여행자센터를 찾아 정부를 대표해 훈장을 전달했다. 장소가 제주올레 여행자센터였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훈장이 전달된 곳은 단순한 기념 공간이 아니라, 고인이 평생 지키고 키워 온 철학이 구체적인 풍경과 사람들 속에서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번 추서는 과거의 업적을 봉인하는 의식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길 위의 유산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어떤 사람은 길을 따라 걷고, 어떤 사람은 길을 만든다. 그러나 아주 드물게, 어떤 사람은 한 사회가 길을 대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기도 한다. 고(故)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그가 만든 것은 단지 제주 해안과 마을을 잇는 탐방로만이 아니었다. 그는 속도와 소비 중심의 관광 문법 속에서, 천천히 걷고 머물며 자연과 마을, 여행자와 주민이 함께 숨 쉬는 여행의 다른 가능성을 한국 사회에 열어 보였다.
그래서 정부가 고인에게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한 것은 한 개인의 공로를 기리는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의 여행문화와 지역관광의 방향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일로 읽힌다. 서명숙 이사장 한 사람이 낸 발자국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걸음을 바꾸었는지를 다시금 기억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서명숙 이사장은 2007년부터 제주올레 길을 조성하고 운영하며, 그 길을 2026년 6월까지 누적 1,340만 명이 찾은 국내 대표 걷기 여행길로 성장시켰다. 이 수치는 단지 이용객 수의 성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뒤에는 우리 사회의 여행 감각이 얼마나 크게 달라졌는지가 담겨 있다.
예전의 관광이 빠르게 이동하고 많이 소비하는 방식에 가까웠다면, 제주올레는 그 반대의 방향을 제안했다. 천천히 걷고, 길가의 풍경을 읽고, 마을의 숨결을 느끼며, 여행이 단순한 방문이 아니라 관계 맺기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이 점에서 서명숙 이사장의 공적은 단순한 관광 인프라 구축을 넘어선다. 그는 길을 만들었지만, 사실은 문화를 만들었다. 걷기 여행을 하나의 취향이 아니라 사회적 경험으로 바꾸었고, 여행을 소비가 아닌 사유와 공존의 방식으로 재해석하게 했다.
제주올레가 사랑받은 이유는 아름다운 풍경 때문만이 아니라, 그 풍경을 대하는 태도까지 바꾸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제주올레를 걸으며 자연을 더 천천히 보게 되었고, 마을을 더 조용히 통과하는 법을 배웠으며, 덜 소유하고 더 경험하는 여행 방법을 익혔다.
고인은 특히 걷기 여행을 매개로 자연과 여행자, 지역민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생태·문화 공간을 구축하는 데 힘썼다. 이것은 오늘의 관광정책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문제의식이다. 지역관광이 성공하려면 관광객 수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지역 주민의 삶과 자연환경이 함께 존중받아야 한다.
제주올레는 그런 의미에서 지속 가능한 관광의 선구적 모델이었다. 여행자는 길을 걷고, 지역민은 그 길을 통해 새로운 경제와 만남의 기회를 얻으며, 자연은 개발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지켜야 할 기반으로 다시 인식되었다. 이 삼자의 균형을 끊임없이 고민했다는 점이 제주올레를 단순한 트레킹 코스와 구별되게 만든다.
더 나아가 고인은 제주올레 길의 모델을 일본과 몽골로 확산시키며 국제교류형 걷기 여행 모델로 발전시켰다. 이는 길이 지역 내부의 관광자원에 머무르지 않고, 문화와 문화, 사람과 사람, 나라와 나라를 잇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보통 세계화는 거대한 자본과 시스템을 통해 이야기되지만, 서명숙 이사장이 보여준 연결은 훨씬 더 인간적이고 느린 방식이었다. 걷는다는 가장 원초적인 행위를 통해 서로 다른 지역과 문화가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 그것이야말로 제주올레가 남긴 더 큰 유산일지 모른다.
이번 훈장 추서는 그래서 “제주의 길 하나를 잘 만들었다”라는 수준의 포상이 아니다. 그것은 한 개인이 지역의 자연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관광의 미래를 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속도를 늦추는 여행이 오히려 더 깊은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길을 통해 공동체와 세계를 연결하는 새로운 상상력을 제시했다는 것을 국가가 인정한 것이다.
걷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행위처럼 보이지만, 현대사회에서 그것은 종종 가장 쉽게 잃어버리는 행위이기도 하다. 자동차와 속도, 효율과 목적지가 우선되는 사회에서 걷는다는 것은 시간을 다르게 쓰고, 공간을 다르게 인식하며, 타인과 자연을 다르게 만나는 방식이 된다.
제주올레는 그 걷기를 다시 공공의 문화로 끌어올렸다. 그래서 고인의 업적은 길이라는 물리적 성과보다도, 걸음의 철학을 사회 안에 심었다는 데 더 깊은 의미가 있다. 또한, 그의 작업은 지역의 가치를 지역 바깥 사람에게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지역 주민 자신이 자기 땅을 다시 보게 만드는 효과도 가져왔다.
한 지역의 골목과 해안, 마을 길이 단지 일상의 배경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깊은 위로와 사유의 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지역의 자존감과도 연결된다. 제주올레는 제주를 대표하는 콘텐츠이면서 동시에, 제주 사람들이 자기 터전을 새롭게 읽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최휘영 장관이 직접 제주올레 여행자센터를 찾아 훈장을 전달한 것도 그런 맥락을 생각하게 한다. 정부의 포상은 상징의 언어다. 누구의 삶을 국가가 기억할 것인가, 어떤 가치가 공동체에 중요했는가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이번 추서를 통해 정부는 개발과 속도 중심의 성장만이 아니라, 생태와 공존, 느린 여행, 지역과 사람을 잇는 문화적 실천 역시 국가 발전의 중요한 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서명숙 이사장은 이 땅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길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많은 사람이 그 길을 계속 걷고 있고, 그 길 위에서 새로운 여행자와 지역민의 관계가 만들어지고 있으며, 걷기 여행의 철학은 이제 한국 사회 곳곳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한 사람의 상상력은 제주에서 시작됐지만, 그 영향은 한국의 관광문화 전반으로 번져 갔다. 이번 국민훈장 모란장 추서는 그 발자취를 공식적으로 기리는 일이면서도, 동시에 앞으로 우리가 어떤 여행을 지향해야 하는가에 관한 질문이기도 하다.
길은 원래 누군가 먼저 걸어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어떤 길은 그 길을 만든 사람의 삶이 끝난 뒤에도 오래 남아 사람들을 이끈다. 서명숙 이사장이 남긴 제주올레가 바로 그런 길이다. 이번 훈장은 그 길이 얼마나 멀리, 얼마나 깊게 우리 사회를 바꾸어 놓았는지를 보여주는 메아리로 남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