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네트워크뉴스문화유산2026. 9. 30. 오후 1:07:27

『동국세시기』·『음식디미방』·『임원경제지』 속 조리법 현대적으로 재해석

한국의집, 고문헌 속 음식과 가을 제철 식재료를 한 상에 연결 호박타락죽·옥정반·개암빙과로 ‘기록 속 한식’을 오늘의 미식 경험으로 확장

최대식 기자
『동국세시기』·『음식디미방』·『임원경제지』 속 조리법 현대적으로 재해석
건나물 생선찜, 옥정반과 복어국, 호박식혜빙과

전통음식을 지키는 방법은 옛 조리법을 그대로 반복하는 데만 있지 않다. 기록 속 음식의 원리와 이야기를 이해하고 오늘의 계절과 식재료에 맞게 다시 식탁에 올리는 것 역시 전승의 한 방식이다. 

국가유산청 산하 국가유산진흥원(원장 이귀영)이 운영하는 ‘한국의집’이 가을을 맞아 고조리서와 옛 문헌에 기록된 조리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궁중음식과 전통 다과를 선보인다.

이번 가을 메뉴에는 단호박과 연근, 개암, 무화과 등 제철 식재료와 『동국세시기』, 『음식디미방』, 『임원경제지』 등 옛 기록에 전하는 음식문화가 함께 담겼다. 조희숙·김도섭 셰프는 전통 조리법의 기본적인 맥락을 살리면서도 현재의 식재료와 조리 방식에 맞춰 메뉴를 재구성했다.

오찬의 ‘호박타락죽’은 『동국세시기』에 음력 시월부터 정월까지 내의원에서 우유를 이용한 음식을 왕에게 올렸다는 기록에서 착안했다. 가을 단호박에 쌀가루와 우유를 넣어 계절의 맛과 궁중 음식문화를 연결했다.

만찬에서는 ‘착면청포쌈’, ‘잣깨즙채’, ‘건나물생선찜’, ‘옥정반’ 등을 선보인다. 착면청포쌈은 『음식디미방』의 착면 조리법을 국산 녹두 녹말피와 채소로 풀어냈고, 잣깨즙채는 옛 깨국과 수계탕 조리법을 바탕으로 닭살·게살 만두, 대하, 문어, 과일과 채소를 잣깨즙과 함께 구성했다.

‘옥정반’은 『임원경제지』에 기록된 연근과 연씨로 짓는 밥을 바탕으로 한다. 국산 연근과 연씨에 곤드레와 능이버섯을 더하고 숨두부, 조갯살 양념장, 복어국을 함께 내면서 옛 기록을 오늘의 한 상으로 확장했다.

계절에 맞춰 기존 메뉴에도 변화가 더해졌다. 전복과 새우를 활용한 ‘전복새우지짐적’에는 제철 무를 곁들이고, 전통 녹두편에서 착안한 ‘계육녹두편’에는 연근을 더했다.

후식에서도 전통 기록과 계절성이 만난다. ‘개암빙과’는 『규합총서』에 개암을 갈아 죽을 쑤는 조리법에서 착안해 보성에서 재배한 개암을 구워 빙과로 만들었다.

전통 다과 공간 ‘고호재’에서는 사과단자, 무화과정과, 유자약과, 홍시과편 등 가을 다과상을 운영한다.

지난 7월 JTBC ‘톡파원 25시’ 방송 이후 관심을 모았던 ‘호박식혜빙과’도 다시 선보인다. 단호박과 늙은호박 빙과에 졸인 식혜, 오미자와 키위정과를 곁들인 메뉴로, 기존 다이닝 후식에서 고호재 단품 메뉴로 영역을 넓혔다.

이 같은 시도에서 주목할 것은 전통음식의 ‘재현’과 ‘재해석’ 사이의 균형이다. 고문헌은 조리법만 전달하는 자료가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어떤 계절에 어떤 재료를 먹었으며 음식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보여주는 문화 기록이기도 하다. 

오늘의 조리사가 그 기록을 다시 읽고 현재의 감각으로 풀어낼 때 전통은 과거의 표본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음식문화가 된다.

국가유산청 산하 국가유산진흥원(원장 이귀영) 한류진흥실 홍혜진 실장은 “가을 제철 식재료와 전통 조리법이 어우러진 한국의집만의 한식을 경험하기를 바란다”며 “방송으로 많은 관심을 받은 호박식혜빙과도 가을에 맞게 새롭게 선보이는 만큼 함께 즐겨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의집 가을 메뉴는 12월 초까지 운영된다. 음식문화유산은 기록 속에만 남아 있을 때보다 누군가 다시 만들고, 맛보고, 다음 사람에게 이야기할 때 생명력을 얻는다. 

옛 문헌의 한 줄이 제철 식재료와 조리사의 해석을 거쳐 오늘의 음식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은 전통이 어떻게 현재성을 얻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한국의집에서 제시하는 가을 식탁은 ‘옛것을 보존하는 한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옛것을 오늘의 감각으로 이어가는 한식’을 보여주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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