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정원을 기억하게 만드는 것은 단풍의 색만이 아니다. 잎을 스쳤을 때 퍼지는 향, 열매가 익어가는 모습,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식물의 표정도 정원을 경험하는 중요한 요소다.
산림청 국립수목원(원장 안병기)이 10월 ‘우리의 정원식물’로 ‘초피나무’(Zanthoxylum piperitum (L.) DC.)를 선정한 것도 이 식물이 지닌 색과 향, 계절성을 함께 보여주기 위해서다.
초피나무는 계절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봄에는 여린 잎이 돋고 초여름에는 황록색 꽃을 피운다. 10월이 되면 붉은 열매가 익고, 열매의 껍질이 벌어지면서 윤기 나는 검은 씨앗이 드러난다. 낙엽이 지기 시작하는 가을 정원에서 붉은 열매와 검은 씨앗은 뚜렷한 색채 대비를 만든다.
초피나무의 특징은 시각적인 아름다움에만 있지 않다. 잎과 과피에는 정유 성분이 들어 있어 가지가 흔들리거나 잎을 만졌을 때 감귤류를 떠올리게 하는 산뜻함과 특유의 알싸한 향이 퍼진다.
이 향은 초피나무가 오랫동안 우리 음식과 생활 속에서 활용돼 온 식물이라는 점과도 연결된다. 정원에서는 익숙한 생활 식물을 새로운 감각으로 다시 만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정원 활용성도 높다. 초피나무는 중부 이남의 햇볕이 잘 드는 산자락이나 골짜기 어귀에서 자라며 건조와 추위에도 비교적 잘 견딘다. 비교적 아담하게 자라는 특성을 이용해 단독으로 심어 수형을 감상할 수 있고, 가시가 있는 줄기의 특성을 살려 정원 경계부에 배치할 수도 있다.
건강하게 기르려면 햇빛이 충분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양지나 반음지가 적합하다. 토양은 빗물이 고이지 않는 부식질이 섞인 사질양토가 좋다. 뿌리가 지표면 가까이에 퍼지는 특성이 있어 가을철 건조기에는 바크(bark, 정원 관리에서 쓰는 나무껍질 조각)나 낙엽을 덮어 수분을 유지해주는 관리가 필요하다.
번식도 가능하다. 종자로 키울 때는 10월에 수확한 검은 씨앗을 깨끗이 씻어 흙 속에서 겨울을 보내게 한 뒤 이듬해 봄 파종한다. 가지를 이용할 때는 6~7월 그해 자란 가지 가운데 단단해진 부분을 잘라 모래흙 등에 꽂아 뿌리를 내리도록 한다.
국립수목원이 매달 ‘우리의 정원식물’을 소개하는 일은 자생식물을 산이나 숲에서 만나는 대상으로만 두지 않고 생활 가까이에 있는 정원의 소재로 확장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특히, 초피나무처럼 향과 열매, 계절 변화가 뚜렷한 식물은 정원이 단순히 바라보는 경관이 아니라, 여러 감각으로 경험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혁진 산림생물자원활용센터장은 초피나무를 “붉은 껍질 속 까만 보석을 품은 열매의 단아함과 잎과 줄기에서 터져 나오는 명쾌한 향기로 가을의 깊이를 더해주는 토종 자생수종”이라고 설명했다.
김혁진 산림생물자원활용센터장은 “초피나무는 붉은 껍질 속 까만 보석을 품은 열매의 단아함과 함께, 잎과 줄기에서 터져 나오는 명쾌한 향기로 가을의 깊이를 더해주는 토종 자생수종이다”라며, “10월, 초피나무의 생기 넘치는 향취와 함께 차분하게 물들어가는 가을 정원의 묘미를 발견해 보시길 권한다”라고 전했다.
좋은 정원은 화려한 꽃이 얼마나 많은 지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손끝에 닿는 잎의 질감, 계절마다 달라지는 열매의 색, 우연히 스쳐 지나갈 때 남는 향까지 더해질 때 정원은 기억에 남는 공간이 된다. 초피나무는 우리 산과 생활 속에서 익숙했던 자생식물이 현대의 정원에서도 충분히 새로운 풍경과 감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