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제작소와 카카오가 공동 주최·주관한 ‘대한민국 사회혁신 콘퍼런스 2026(Social Innovation Conference, SIC 2026)’이 지난 14일 서울 중구 페럼타워 페럼홀에서 열렸다. 이번 행사는 희망제작소 창립 20주년을 기념해 마련됐으며, 기조연설을 시작으로 ‘사회혁신의 향로’, ‘지역 순환 경제와 혁신 주체’, ‘공공 혁신’, ‘자원 연계와 가치측정’ 등 다양한 세션이 이어졌다.
이번 콘퍼런스의 핵심은 제목보다 의제의 배열에서 더 잘 드러난다. 사회혁신의 경험을 돌아보는 데서 출발해, 지역경제와 공공 영역, 가치측정과 자원 연계, 시민사회의 역할까지 논의를 확장했다는 점이다.
이는 사회혁신이 더 이상 특정 분야의 실험이나 개별 기관의 선한 프로젝트로만 남아 있어서는 안 되며, 지역과 공공, 금융과 시민사회, 정책과 현장을 잇는 입체적 체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반영한다.
특히, 200명이 넘는 참석자가 모인 가운데 열린 ‘자원 연계와 가치측정’ 세션은 이날 행사의 중심축으로 주목받았다. 희망제작소, 카카오임팩트, 사회적가치연구원,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임팩트리서치랩 등 현장을 대표하는 기관들이 한자리에 모여 측정의 한계와 가능성을 논의했고, 개별 기업이나 사업의 평가를 넘어 사회혁신 생태계 전체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치측정 논의가 나아가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사회적 가치측정은 한동안 “얼마나 수치화할 수 있는가”에 무게가 실려 왔다. 그러나 현실은 점점 더 다른 질문을 요구한다. 측정이 끝난 뒤 무엇이 남는가, 그 숫자가 현장의 신뢰를 높이고 자원의 흐름을 바꾸는 데 실제로 이바지하는가, 그리고 그 과정이 사회혁신 주체들을 더 연결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는가 하는 질문들이다.
이번 세션이 ‘측정을 넘어 생태계로’라는 화두를 던진 것은 바로 그런 전환의 필요성을 압축한 표현으로 읽힌다.
홍진아 카카오임팩트 본부장은 카카오임팩트 설립 8년간의 사업 변화를 소개하며, 재단들이 공통적으로 마주하는 세 가지 고민을 제시했다.
임팩트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재단의 역할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기업 어젠다와 사회적 미션을 어떻게 정렬할 것인가가 그것이다. 이 문제들은 개별 재단만의 고민이 아니라, 오늘날 기업 기반 사회공헌과 임팩트 생태계 전반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기업은 사회문제 해결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동시에 기업의 전략과 공익적 목적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는 여전히 쉽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다.
최인영 사회적가치연구원 측정센터 팀장은 SK그룹의 DBL(Double Bottom Line) 측정체계를 소개하며, 화폐화 측정은 어디까지나 수단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어떤 사회문제를 해결했고, 누구의 고통을 덜어주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와 맥락이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측정이 진정한 의미가 있다는 설명이다.
또 8년간의 DBL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성과를 단순히 사후적으로 기록하는 단계를 넘어, 미래 성과를 선제적으로 설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안으로 AI 기반의 측정·평가 디지털 플랫폼을 열 계획이라는 언급도 덧붙였다.
숫자도 중요하지만, 숫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더 나아가 측정은 결과를 뒤늦게 정리하는 작업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의 변화를 더 잘 설계하도록 돕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혁신 분야가 이제 ‘잘한 일을 정당화하는 언어’에서 ‘더 나은 개입을 설계하는 언어’로 이동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서종식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본부장은 측정의 궁극적 목적이 신뢰 구축과 거래비용 절감을 통한 자원 연계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적 수준의 정책 데이터를 가지고도 이를 민간 측정체계와 연결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사회혁신 공공인프라 구축을 위한 로드맵 마련을 촉구했다.
사회혁신의 현장에는 좋은 활동이 많지만, 그것이 투자나 후원, 정책 연계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공공과 민간의 데이터 체계가 따로 놀기 때문이다. 측정이 자원 연계로 이어지려면 결국 신뢰할 수 있는 공통 언어와 연결 구조가 필요하다.
이호영 임팩트리서치랩 대표는 화폐가치 측정의 의미와 한계를 실무적 시각에서 짚었다. 그는 화폐가치 측정이 현장에 직접 가보지 못하는 의사결정권자에게 현장의 상황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의미가 있지만, 같은 수치라도 사회적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르게 평가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데이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의사결정권자가 현장의 변화를 감각할 수 있는 방향으로 측정이 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혁신 분야가 데이터 중심주의에만 머무르지 않고, 맥락과 서사, 현장 경험을 어떻게 다시 측정의 언어와 결합할 것인가를 고민해야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안영삼 희망제작소 사회혁신팀 팀장은 지역 내 청년 활동가와 사회혁신가를 ‘소셜디자이너’로 발굴·연결하는 활동을 소개하며,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가치를 측정하는 7가지 진단 프레임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또 측정과 진단이 실제 자원 연계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를 모색하는 것이 핵심 과제라고 강조하며, 지역 현장의 작은 실험을 객관적으로 증명하고 확산하기 위한 연구 보고서도 발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 발표가 특히 의미 있는 이유는 사회혁신의 가치를 ‘완성된 결과’가 아니라, ‘축적되는 과정’ 속에서 보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지역의 작은 실험은 대개 아직 미완성이며, 눈에 띄는 성과로 바로 나타나지 않을 때도 많다.
그러나 바로 그런 과정의 축적이 이후 더 큰 변화의 토대가 된다. 이를 진단하고 증명하는 프레임을 만든다는 것은, 작은 시도가 사라지지 않고 다음 단계로 건너갈 수 있게 만드는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다.
이날 컨퍼런스에서는 지역소멸 위기 속에서 지역의 자생력을 키우는 ‘지역 순환 경제(Community Wealth Building, CWB)’도 핵심 의제로 다뤄졌다. 양준호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지역이 단순한 생산기지에 머무르지 않고 경제적 자기결정권을 가진 공간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장 전문가들은 지역 순환 경제 시도의 성과와 한계를 공유하며, 제도와 금융 구조 혁신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는 사회혁신이 더 이상 비영리 영역에만 머무를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지역이 살아나려면 결국 자본과 소비, 생산과 고용이 지역 안에서 어떻게 순환하는지를 다시 설계해야 하고, 사회혁신은 그 구조 전환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시민사회를 ‘비판적 문제의식, 공공성의 감각, 민주적 절차를 훈련하는 장’으로 재정의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시민사회를 거쳐 공공·기업·법률 등 다양한 섹터로 이동한 활동가들의 증언을 통해,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하는 주체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시민사회의 ‘뿌리’ 역할이 더 중요해진다는 인식이 공유됐다.
시민사회는 종종 제도권 밖의 보조적 영역처럼 다뤄지지만, 실제로는 사회 전체가 공공성을 훈련하고 민주적 감각을 익히는 토양 역할을 해 왔다. 이번 콘퍼런스는 그래서 단순한 기념행사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사회혁신의 지난 20년을 돌아보는 동시에, 앞으로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묻는 자리였다.
측정은 더 정교해져야 하지만 수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자원은 더 많이 필요하지만, 신뢰와 연결 구조 없이는 흐르지 않으며, 지역은 살아나야 하지만 외부 지원만으로는 오래 버티기 어렵다. 그리고 시민사회는 작아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넓은 사회를 떠받치는 기반으로 다시 읽혀야 한다는 메시지가 이날 논의 전반을 관통했다.
‘대한민국 사회혁신 컨퍼런스 2026’이 남긴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인지도 모른다. 사회혁신은 과연 잘 측정되고 있는가가 아니라, 잘 연결되고 있는가. 숫자로 증명하는 일을 넘어 생태계로 확장하는 일, 바로 그 전환이 이제 사회혁신의 다음 단계로 요구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