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네트워크추천뉴스문화유산2026. 7. 1. 오후 5:39:11

국가유산청, 「장성 백양사 백학봉」 지정 구역 확대로 명승 가치 확장

백학봉 중심 지정에서 백양사·산내 암자까지 확대 천년고찰 백양사와 백암산 생태·불교·문학·민중사의 층위 함께 담아낸 명승 재해석

최대식 기자
국가유산청, 「장성 백양사 백학봉」 지정 구역 확대로 명승 가치 확장
백양사와 옥녀봉 가을 경관

국가유산청(청장 허민)은 백암산 일대의 뛰어난 자연경관과 천년고찰 백양사가 지닌 역사·문화적 가치를 통합적으로 보존하고 활용하기 위해, 명승 「장성 백양사 백학봉」의 지정 구역을 백양사 및 산내 암자까지 포함해 대폭 확대하고, 명칭도 「장성 백암산 백양사 일원」으로 변경한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명승의 개념을 더 넓고 깊게 이해하려는 흐름 속에서 주목된다. 기존의 「장성 백양사 백학봉」이라는 명칭은 백학봉의 빼어난 경관을 중심에 두고 있었다. 물론, 백학봉은 오래전부터 백양사의 상징적인 배경이자 호남의 명승으로 널리 알려진 절경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공간의 가치는 단지 한 장면의 아름다움에 머무르지 않는다. 백암산의 사계절 풍광, 백양사와 쌍계루, 대웅전에서 바라보는 암벽의 위용, 그리고 그 주변에 자리한 수많은 암자와 문화유산, 생태자원까지 함께 볼 때 비로소 이 일대의 참모습이 드러난다. 이번 확대 지정은 바로 그 전체성을 제도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명승은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오래도록 사람의 시선과 기억을 붙잡아 온 장소, 자연과 역사, 문화와 서사가 겹겹이 쌓여 하나의 공간적 의미를 이루는 곳이야말로 진정한 명승이다. 

이런 점에서 국가유산청이 기존 명승인 「장성 백양사 백학봉」의 지정 구역을 대폭 확대하고, 명칭을 「장성 백암산 백양사 일원」으로 바꾸기로 한 것은 단순한 행정적 조정으로만 보기 어렵다. 이는 한 봉우리의 절경을 넘어, 그 절경을 둘러싼 사찰과 암자, 생태와 문학, 수행과 민중의 기억까지 함께 묶어 이 공간의 가치를 더 온전하게 읽어 내겠다는 재평가이기 때문이다.

백암산은 사계절마다 뚜렷한 표정을 가진 산이다. 봄과 여름의 짙은 녹음, 가을 단풍의 화려함, 겨울의 고요한 산세는 백학봉을 중심으로 조화를 이루며 예부터 많은 이들의 찬탄을 받아 왔다.

주변에는 천연기념물인 「장성 백양사 비자나무 숲」과 「장성 백양사 고불매」가 자리하고 있으며, 백양계곡의 수달 서식지를 포함해 1,500여 종에 이르는 동식물이 살아가는 생태환경의 보고이기도 하다. 이는 이 일대가 자연 유산으로서도 매우 풍부한 층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특히, 백양사 주변의 단풍 경관과 쌍계루, 대웅전에서 마주하는 백학봉의 거대한 암벽은 오랫동안 호남의 대표적인 명승 장면으로 회자돼 왔다. 그러나 이번 지정 확대가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명승은 풍경을 바라보는 장소이면서 동시에 그 풍경 안에서 어떤 삶과 역사, 사유가 이어져 왔는지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이 배경이 되고 사찰과 암자가 인간의 시간과 기억을 더 하면서, 이곳은 단지 예쁜 풍경이 아니라, ‘의미 있는 경관’이 된다.

백양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이고, 고려시대에는 원오국사(1215~1286)와 각진국사(1270~1355) 등 역대 고승들이 머물렀던 유서 깊은 사찰이다. 또한, 고려·조선시대 문인과 학자들이 교유하며 시문과 기록을 남긴 장소이기도 하다.

이색의 「쌍루기」와 정도전의 「정토사교루기」를 비롯해 수많은 기록이 전해진다는 사실은 백양사가 단순한 불교 의례 공간을 넘어 지식인과 수행자, 유람객의 시선이 교차하던 정신적 공간이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이 문화적 기억까지 축적할 때, 그 장소의 상징성은 훨씬 더 커진다.

쌍계루와 백학봉 겨울 풍경

 

현재 백양사에는 운문암, 청류암, 약사암, 천진암 등 약 10개의 산내 암자가 자리하고 있다. 이 암자들은 단순한 부속 수행처가 아니다. 승려들만이 아니라, 고위 문관, 학자, 유배인들까지 찾아와 머물며 학문을 닦고 유람하던 역사적·문화적 공간이다. 

즉, 백양사 일원은 중심 사찰 하나로 완성되는 곳이 아니라, 주변 암자들의 기능과 기억까지 함께 읽을 때 비로소 완결성을 얻는다. 이번에 지정 구역을 산내 암자까지 포함하였다는 것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더 정확하게 반영하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특히,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 전봉준이 일제를 피해 운문암과 청류암에 피신했던 것으로 알려진 사실은 이 공간의 의미를 불교사와 문학사에만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백양사 일원은 민중사의 흔적, 격동의 근대사, 그리고 억압의 시대를 통과한 삶의 기억까지 품고 있는 장소다. 다시 말해 이곳은 산수의 아름다움과 수행의 고요, 학문과 유람의 전통, 저항과 피신의 역사까지 함께 새겨진 복합적 공간이다. 명승의 가치를 단지 경치의 아름다움으로만 보아서는 놓치게 되는 층위가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각 암자가 지닌 무형 유산적 가치도 눈여겨볼 만하다. 승려들의 다비 의식(장례 의식)을 치르는 서향암, 사찰음식 체험과 템플스테이, 요리 교실 등이 열리는 천진암 등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수행 문화와 생활 문화를 이어 가고 있다. 

문화유산은 돌과 목재, 건축물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곳에서 이어지는 의례, 음식, 체험, 생활 방식이 함께 남아 있을 때 비로소 온전한 유산이 된다. 국가유산청이 이번 확대 지정을 통해 “자연경관과 역사 문화가 결합한 우수한 가치”를 강조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중에서도 핵심 암자인 운문암은 특별한 상징성을 지닌다. 17세기 인헌왕후의 대시주로 중창된 이후, 조선 후기 불교의 선풍을 일으킨 백파긍선(1767~1852) 스님을 비롯한 수많은 선승이 수행한 참선 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더하여 운문암에서 바라보는 백암산의 조망은 그 자체로 절경으로 꼽힌다. 이처럼 한 암자가 역사적 인물, 수행 전통, 경관 자원까지 함께 품고 있다는 점은 백양사 일원의 명승 가치가 얼마나 입체적인지를 잘 보여 준다.

국가유산청은 이번 확대 지정을 통해 「장성 백암산 백양사 일원」의 우수한 가치가 더욱 널리 확산하기를 기대하며, 지자체 등 관계기관과 협력해 체계적으로 보존·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앞으로는 새롭게 잠재 자원을 발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미 지정된 국가유산에 대해서도 추가 조사를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끌어내는 적극 행정을 이어 가겠다고 설명했다.

문화유산 행정은 흔히 ‘새로운 지정’에 주목하기 쉽지만, 이미 지정된 유산의 의미를 더 깊이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

백양사 일원 사례는 문화유산이 고정된 목록이 아니라, 조사와 해석이 축적될수록 더 넓은 의미를 드러낼 수 있는 살아 있는 대상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이는 명승을 단순한 풍경 자원이 아니라, 자연과 생태, 역사와 종교, 문학과 민중사가 결합된 통합 유산으로 읽으려는 방향 전환이기도 하다.

「장성 백암산 백양사 일원」이라는 새 이름은 단지 명칭의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이 장소를 바라보는 시선의 확장이다. 백학봉만 보던 눈이 백암산 전체를 보고, 절경만 보던 눈이 사찰과 암자의 시간까지 읽으며, 아름다움만 보던 눈이 생태와 역사, 무형의 전통까지 함께 보게 되는 변화다. 경관은 자연이 만들지만, 명승은 시간이 만든다. 그리고 이번 확대 지정은 그 시간이 남긴 의미를 더 온전하게 부르는 작업으로 기억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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