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정원에는 나무와 꽃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누가 그곳을 거닐었고 어떤 시대를 살았는지, 그 공간을 어떻게 관리하고 다음 세대에 전했는지에 대한 시간이 함께 쌓여 있다. 세계의 왕궁과 역사정원을 통해 정원의 문화유산적 가치를 살펴보고, 단종의 역사를 간직한 영월의 미래를 ‘정원’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산림청 국립수목원(원장 안병기)과 영월군이 주관한 ‘2026 영월 국제정원심포지엄’이 10월 8일 영월군 종합사회복지관에서 열렸다.
올해 주제는 ‘시간을 품은 정원, 왕의 정원’이다. 왕이 머물고 휴식했던 공간의 정원이 수백 년의 시간을 지나 어떻게 보존되고 오늘의 문화유산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국내외 사례를 통해 살펴봤다.
첫 발표에서는 스웨덴 드롯닝홀름 궁전의 조경가 닐스 콜비에른 베른(Nils Kolbjörn Waern)이 ‘드롯닝홀름 궁전: 지나온 350년, 앞으로의 100년’을 주제로 발표했다. 오랜 역사적 경관을 어떻게 보존하면서 미래의 정원으로 이어갈 것인가에 초점을 맞췄다.
이어 오스트리아 연방정원의 게르트 코흐(Gerd Koch)는 벨베데레 궁전 정원의 수자원 관리 시스템을 소개했다. 역사정원의 보존이 경관을 그대로 유지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물과 식물, 시설을 지속해 관리하는 기술과 운영체계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정원의 정체성도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국립수목원 정미애 연구사는 ‘K-garden 실증기반 개념정립 연구’를 통해 한국정원의 고유한 특성과 가치를 살펴봤으며, 일본의 다나카 모토키(Tanaka Motoki)는 교토 역사정원의 사례를 통해 오랜 정원이 오늘날까지 문화자산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소개했다.
마지막 발표는 개최지인 영월의 미래로 이어졌다. 강원대학교 윤영조 교수는 ‘단종의 유산을 품은 정원도시 영월의 지향과 실천’을 주제로, 단종의 역사와 지역의 장소성을 정원문화에 연결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이번 심포지엄에서 주목할 부분은 ‘왕의 정원’을 과거 왕실의 화려한 공간으로만 바라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역사정원은 시대에 따라 식물이 자라고 사라지며 관리 방식도 달라진다. 따라서, 무엇을 보존하고, 무엇을 오늘의 환경에 맞게 이어갈 것인지에 대한 선택과 연구가 필요하다.
정원을 하나의 ‘살아 있는 문화유산’으로 바라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건축물과 달리 정원은 식물이 끊임없이 성장하고 변화한다. 역사성을 지키면서도 현재의 환경과 이용 방식에 맞춰 지속해 관리해야 한다.
영월에도 이러한 관점은 새로운 가능성을 던진다. 단종이라는 역사적 인물과 장릉 등 지역의 기억을 단순한 역사관광 자원으로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원·경관·도시공간과 연결한다면, 역사적 장소성을 시민과 관광객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문화로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배준규 국립수목원 전시교육연구과장은 “정원은 한 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담아 다음 세대로 이어가는 소중한 자산이다”라며, “이번 심포지엄이 영월의 역사적 가치를 정원문화로 이어가는 새로운 가능성을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역사정원을 보존한다는 것은 오래된 정원의 모습을 그대로 멈춰 세우는 일이 아니다. 그 안에 축적된 시간과 사람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도 다음 세대가 그 의미를 읽을 수 있도록 이어가는 일이다.
세계의 왕궁 정원이 수백 년의 시간을 품고 오늘까지 살아남았듯, 영월 역시 단종의 기억을 정원과 경관 속에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에 따라, ‘역사가 있는 도시’를 넘어 ‘역사를 경험하는 정원도시’로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갈 수 있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