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에너지환경부 산하 국립호남권생물자원관(관장 박진영)은 2021년부터 5년간 국내 섬과 바닷가 지역 100여 곳을 대상으로 자생 세균자원을 조사한 결과, 신종 13종과 미기록종 297종을 포함한 총 310종의 세균자원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는 도서·연안 생태계에 서식하는 미생물의 다양성을 확인하고 국가 생물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추진됐다.
생물다양성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대개 눈에 보이는 생명부터 떠올린다. 숲의 나무와 들꽃, 새와 곤충, 바다의 물고기와 해조류가 먼저 생각난다. 그러나 자연의 가장 깊은 층위에는 훨씬 작고, 훨씬 조용하지만, 생태계 전체를 떠받치는 생명들이 있다. 바로 미생물이다.
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토양을 살리고, 식물의 생장을 돕고, 물질을 분해하며, 생태계의 순환을 움직인다. 동시에 인간에게는 의약과 농업, 환경 기술과 바이오 산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자원이기도 하다.
국립호남권생물자원관이 지난 5년간 국내 섬과 바닷가 지역 100여 곳을 조사해 신종 13종과 미기록종 297종, 총 310종의 세균자원을 발굴했다고 밝힌 것은 그래서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아직 알지 못했던 생명의 지도를 새로 그리고, 국가 생물자원의 경계를 넓힌 일이다.
이번 성과가 주목되는 이유는 조사 대상 자체가 쉽지 않은 곳들이었기 때문이다. 섬과 바닷가는 기후와 염분, 바람과 지형, 육지와 바다의 경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독특한 생태 공간이다. 특히, 도서·연안 지역은 접근이 쉽지 않고, 조사 인력과 장비를 안정적으로 투입하기도 까다롭다.
하지만, 바로 그래서 아직 밝혀지지 않은 미생물 다양성이 풍부하게 남아 있을 가능성도 크다. 인간의 손이 상대적으로 덜 닿은 환경, 특수한 생태 조건, 지역마다 다른 미세한 환경 차이는 새로운 생물자원을 품고 있을 가능성을 높인다. 이번 조사 결과는 그런 기대가 결코 과장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연구진은 해수, 해양퇴적물, 염생식물, 토양 등 다양한 환경 시료를 채집해 세균을 분리·동정했다. 여기서 동정은 단순히 미생물을 찾아내는 수준이 아니라, 그 생물이 분류학적으로 어디에 속하고 어떤 종인지 정확히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는 생물다양성 연구의 가장 기본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이름을 붙일 수 있어야 존재를 확인할 수 있고, 존재를 확인해야 비로소 자원으로서의 가치도 논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물 주권은 결국 “무엇이 우리에게 있는지 아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특히, 국립호남권생물자원관은 2023년부터 친환경 연구선 ‘섬누림호’를 활용해 가거도, 추자도, 어청도 등 접근이 어려운 먼 섬 지역까지 조사 범위를 넓혔다.
미생물 조사는 실험실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 현장에 얼마나 깊이 들어갈 수 있는가에 따라 성과가 달라진다. 먼 섬으로 갈수록 조사 비용과 시간, 환경적 제약은 커지지만, 동시에 그만큼 독특한 생태계와 새로운 자원을 만날 가능성도 높아진다.
섬누림호를 활용한 조사 확대는 국가 생물다양성 연구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미개척 지역에 접근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번에 발굴된 신종과 미기록종 세균자원은 도서·연안 생물다양성 연구의 기초자료로 활용될 뿐 아니라, 국가 생물종 목록 확대에도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생물종 목록은 단순한 데이터베이스가 아니라, 한 나라가 어떤 생명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본 장부와 같다. 이를 얼마나 풍부하게, 정확하게, 체계적으로 갖추고 있는지는 생물 주권과 직결된다. 미래 바이오 산업 경쟁력은 결국 지금 얼마나 많은 생물자원을 알고 확보하고 있는가와도 연결된다.
더 주목할 점은 이번 조사 성과가 학술적 발견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발굴된 미기록종 가운데 일부는 유용 물질 생산이나 식물 생장 지원 등 산업적 활용 가능성을 가진 자원으로 확인됐다.
이는 생물다양성 조사가 단순한 보존의 언어를 넘어, 산업과 기술, 농업과 의약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즉, 미생물 탐사는 생태계의 가치를 기록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미래 산업의 씨앗을 찾는 일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5년 율도에서 발굴된 미기록종 세균 주시켈라 하레나에다. 이 세균은 선명한 붉은색 색소인 프로디지오신을 생산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프로디지오신은 항균, 항암, 면역조절 기능 등 다양한 생리활성이 보고돼 의약과 바이오 소재 후보 물질로 연구되고 있다.
이는 한 섬의 환경 속에 숨어 있던 미생물이 미래 의약 기술과 바이오 소재 개발의 가능성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생명이 산업의 새로운 기회를 열 수 있다는 사실은 오늘날 생물다양성 연구가 왜 중요한지 가장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또 다른 미기록종인 로세비움 살리눔은 고하도의 염생식물 뿌리 주변에서 분리된 세균이다. 이 세균은 공기 중 질소를 식물이 이용할 수 있는 암모니아 형태로 바꾸는 질소 고정 특성을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식물의 생장을 돕는 친환경 농업 분야에서 활용 가능성을 보여준다.
화학 비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생물 기반 농업기술을 확대하려는 흐름 속에서 이런 미생물자원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도서·연안 미생물 조사는 자연을 이해하는 일인 동시에, 지속 가능한 농업과 산업을 위한 대안을 찾는 일이기도 하다.
이번 연구 결과는 도서·연안 지역을 대상으로 한 체계적인 생물다양성 조사가 미개척 미생물자원 발굴에 매우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는 정책적으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도서·연안 지역은 기후변화에 민감하면서도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공간이다. 해수면 변화, 염분 환경 변화, 기온 상승, 인간 활동 확대 등 여러 요인의 영향을 빠르게 받는 만큼, 지금 이들 지역을 얼마나 정밀하게 조사하고 자원을 확보하느냐는 앞으로의 연구와 보전 전략에서 매우 중요하다. 변화가 빠른 곳일수록 기록도 더 정교해야 하고, 조사도 더 서둘러야 한다.
도서·연안 지역에 대한 조사는 결국 국가 생물 주권 강화와도 직결된다. 생물 주권은 단지 자원을 지키는 개념이 아니라, 우리 땅과 바다, 섬에 어떤 생명이 살아가는지를 스스로 알고, 그것을 체계적으로 확보하며, 필요한 경우 산업과 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권리와 역량을 뜻한다.
지금처럼 바이오 산업과 친환경 기술, 생물 기반 소재의 중요성이 커지는 시대에는 이런 자원 확보가 단순한 연구 성과를 넘어 국가 경쟁력의 한 축이 된다.
박진영 국립호남권생물자원관장은 “앞으로도 도서·연안 지역에 대한 장기 조사와 생물자원 발굴을 지속해 유용 생물자원의 확보와 연구를 확대하고, 이를 바탕으로 생물다양성 연구와 산업화 연계 기반을 더욱 강화하겠다”라고 말했다.
생물다양성 연구는 한 번의 조사로 완성되지 않는다. 계절과 기후, 조사 범위와 기술 변화에 따라 새롭게 드러나는 자원이 계속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미생물은 아직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은 영역이다. 따라서, 장기 조사와 지속적인 축적이야말로 이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도서·연안 미생물 조사 성과는 생물다양성이라는 말의 깊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생물다양성은 단지 희귀한 동식물을 보호하자는 구호가 아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작은 생명까지 포함해, 한 나라가 가진 자연의 잠재력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오래도록 지켜 내며, 미래의 공공 자산으로 전환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섬과 바닷가에서 찾아낸 310종의 세균은 그래서 단순한 연구 결과가 아니라, 한국의 생물자원 지도가 여전히 넓어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