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들길과 산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세상이 환하게 밝아진 듯한 순간을 만난다. 하얗게 피어난 아카시꽃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아카시아꽃이라고 부르지만, 정확한 이름은 아까시나무꽃이다. 이름이 어떻든, 이 계절의 풍경을 가장 눈부시게 만드는 꽃 가운데 하나라는 것은 분명하다.
가까이서 보면 작은 꽃송이들이 다소곳이 매달려 있고, 멀리서 보면 그 군락이 마치 함박눈이라도 소복이 내려앉은 듯한 장관을 이룬다. 봄이 무르익는 동안 온갖 꽃들이 앞다투어 피고 지는 사이에도 아카시꽃은 조용히 때를 기다리다가, 오월이 되면 비로소 꽃망울을 열기 시작한다.
벌들이 분주히 날아들고 바람이 숲을 흔들 때마다 흰 꽃송이들이 살짝씩 흔들리며 은은한 향기를 퍼뜨린다. 그 향기는 코끝을 스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마음속 깊은 기억까지 조용히 흔들어 놓는다.
어린 시절 오월의 아카시꽃길에 서면 괜스레 마음이 설레곤 했다. 소담하게 핀 꽃송이를 바라보다가 한입 가득 넣어보기도 하고, 바람이 불 때마다 눈처럼 흩날리는 꽃잎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했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지고, 이유 없는 눈물이 왈칵 차오르기도 했다.
아마도 그것은 꽃이 주는 향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나가는 계절과 자라나는 마음이 함께 스치던 순간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기억은 어쩌면 지극히 개인적인 추억일지 모른다. 그러나 사월이 가고 오월이 오면, 아카시꽃이 눈처럼 하늘을 장식하는 그 풍경 앞에서 많은 이들이 비슷한 그리움 하나쯤은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오월의 아카시꽃은 단지 예쁜 꽃이 아니라, 지나간 시간과 어린 날의 마음을 다시 불러오는 계절의 신호처럼 느껴진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다시 아카시꽃길에 서 보아도 그 향기는 여전하다. 숲길을 따라 번지는 은은한 향이 마음으로 스며들고, 그 시절의 장면들이 문득문득 되살아난다.
어린 날에는 하루라도 빨리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막상 이렇게 세월이 흐르고 나니 그 시절이 더없이 그립다. 아카시꽃은 그렇게 해마다 오월이면, 흰빛과 향기로 우리에게 오래된 추억 한 장을 다시 펼쳐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