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교육과 보건, 에너지, 농업까지 개발 협력의 방식을 바꾸고 있다. 그러나 AI 기술을 제공하는 것만으로 국가 간 디지털 격차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외교부와 한국국제협력단(KOICA·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은 18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 서울 호텔에서 ‘제19회 서울 ODA 국제회의’를 열고, 개발도상국이 AI를 단순히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활용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개발 협력의 방향을 논의했다.
공적개발원조(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ODA)는 정부 등 공공기관이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과 사회복지 증진을 위해 제공하는 자금·기술협력을 말한다. 2007년부터 매년 열린 서울 ODA 국제회의는 올해 ‘포용적이고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한 AI’를 주제로 국제기구와 학계, 기업, 협력국 정부 관계자들이 참여했다.
이번 회의에서 반복해서 제기된 질문은 명확했다. AI 기술의 혜택을 누가 누릴 것인가다. 국가마다 인터넷과 클라우드, 데이터, 전문인력, 제도적 환경이 다른 상황에서 같은 기술을 일률적으로 제공하면 기존의 격차가 오히려 확대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김진아 외교부 제2차관은 “AI가 생산성과 혁신의 기회를 만들지만, 혜택이 폭넓게 공유되지 않으면 기존 격차가 심화할 수 있다”라며, “단순한 기술 접근성 확대를 넘어 협력국이 자국 여건에 맞게 AI를 활용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역량과 주도성을 강화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기조연설을 맡은 랜드리 시녜(Landry Signé) 썬더버드 국제경영대학원 교수는 “개발도상국이 AI 기술의 단순한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AI 전환을 함께 만들어가는 주체가 돼야 한다”라며, “이를 위해 포용적인 AI 거버넌스와 새로운 파트너십이 필요하다”라고 제안했다.
첫 번째 세션에서는 AI ODA의 기반을 다뤘다. 참석자들은 인터넷 연결만으로 AI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며 클라우드와 데이터, 디지털 공공 인프라, 인재 양성이 함께 구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협력국의 언어와 데이터, 제도적 환경을 기술 설계 단계부터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두 번째 세션에서는 AI가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살폈다. 식스티헤르츠(60Hertz)는 베트남 재생에너지 유통 확대 사례를, 인도 와드와니 AI(Wadhwani AI)는 보건의료 분야 모바일 AI 사례를 소개했다. 노르웨이 개발협력청(Norad)은 AI를 원조 행정과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에 활용한 경험을 공유했다.
마지막 세션에서는 중앙아시아와의 협력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카자흐스탄·투르크메니스탄 정부 관계자와 코이카, 세계은행(World Bank), 아시아개발은행(ADB) 등이 참여해 AI 인재 양성, 컴퓨팅 인프라 확충, 현지 언어 기반 AI 개발 등을 논의했다.
핵심은 국가별 차이를 인정하는 데 있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모두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고 있지만, 인프라와 인력, 정책 여건은 서로 다르다. 따라서, 일률적인 기술 이전보다 각국의 국가 전략과 수요를 반영하고, 사업의 우선순위와 설계 단계부터 협력국이 직접 참여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회의장 밖에서는 국내 AI 기업 10개 회사가 참여한 ‘KOICA AI Partners Fair’도 열렸다. 교육·보건의료·에너지·농업 분야의 AI 기술을 소개하고 개발 협력 현장과의 사업 연계 가능성을 모색했다.
AI 시대 개발 협력의 핵심은 가장 앞선 기술을 얼마나 빨리 전달하느냐에 있지 않다. 협력국이 그 기술을 이해하고 운영하며, 자국의 언어와 문제에 맞게 다시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원조의 대상이던 국가가 기술 전환의 공동 설계자가 될 때 AI는 새로운 격차의 원인이 아니라, 격차를 줄이는 도구가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