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봄은 겨울을 견딘 사람에게 찾아온다는 것이다. 3월 15일, 한가운데쯤 와 있는 봄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다. 곧게 뻗은 길옆으로 강물이 흐르고, 그 위로는 막 피어나기 시작한 계절의 기운이 조용히 번지고 있었다.
그러나 봄은 아직 완전히 제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간간이 스쳐 가는 바람에는 겨울의 서늘함이 남아 있었고, 그 차가운 기운은 마치 봄의 도착을 못마땅해하는 듯했다. 계절은 늘 이렇게 바뀐다. 한순간에 뒤집히지 않고, 밀고 당기며, 물러남과 다가옴이 교차하는 경계 속에서 조금씩 다음으로 넘어간다.
삶도 다르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따뜻한 시절을 원한다. 평온하고 환한 날들을 바라며 살아간다. 그러나 인생에는 반드시 겨울이 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시간, 몸과 마음이 움츠러드는 시간,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간도 찾아온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반갑지 않은 손님이지만, 그렇다고 피해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삶의 겨울은 견디고 통과해야 하는 시간이다. 그 시린 시간을 지나온 사람일수록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더욱더 간절할 것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모든 것이 끝났다고 느끼는 순간과 마주한다. 더는 길이 없다고, 여기서 멈출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마음을 얼어붙게 한다. 혹독한 어려움 앞에서 “끝났다”라는 말이 머릿속을 스칠 때, 사람은 절망과 싸워야 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얼어붙은 마음 한쪽에서는 또 다른 생각이 조용히 피어오른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절망이 전부인 것 같은 순간에도 사람은 끝내 그 한마디로 자신을 붙든다. 반드시 봄이 온다고 확신해서가 아니라, 지나가지 않는 겨울은 없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호승 시인은 「봄길」에서 이렇게 말했다.
“길이 끝난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난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이 시구가 우리 마음에 오래 자리잡는 이유는 분명하다. 길이 끝났다고 여기는 바로 그 자리에서 다시금 길이 시작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어떤 사람은 길을 찾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스스로 길이 되어 다른 이들에게 희망이 되어 주기도 한다.
절망 앞에서 주저앉지 않고, 차가운 계절의 한복판에서도 멈추지 않는 사람, 끝났다고 여겨지는 자리에서도 희망을 붙잡고 기어이 다시 일어서는 사람이 바로 봄길이 되는 사람일 것이다.

3월의 길을 걸으며 이 시를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강은 말없이 흐르고,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그 모든 것 위로 봄은 분명히 오고 있었다. 겨울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려 했지만, 계절의 흐름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봄은 소란스럽게 오지 않았다. 다만 조용하고 단단하게, 그러나 분명한 힘으로 세상을 바꾸고 있었다.
우리 삶의 회복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회복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모든 문제가 사라지고, 상처가 완전히 지워지는 것이 아니다. 회복은 천천히 온다. 언 마음이 조금씩 풀리고, 멈췄던 걸음이 다시 움직이고, 끝이라고 믿었던 자리에서 다시 싹을 틔우는 방식으로 다가온다. 봄은 그런 계절이다. 화려한 선언보다 조용한 지속으로, 삶을 다시 앞으로 밀어주는 시간이다.
그래서 봄은 단순한 계절의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겨울을 견뎌낸 사람에게 주어지는 응답이다. 차가움을 견뎌낸 사람만이 따뜻함의 의미를 알고, 길이 끊어진 듯한 시간을 지나온 사람만이 다시 이어지는 길의 소중함을 안다. 봄은 누구에게나 오지만, 누구에게나 같은 의미로 오지는 않는다. 어떤 이에게 봄은 계절이지만, 어떤 이에게 봄은 버텨낸 시간에 대한 위로다.
3월 한가운데 마주한 길은 그래서 단순한 산책길이 아니었다. 그것은 삶의 이치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길이었다. 차가움과 따뜻함, 끝과 시작, 절망과 희망은 늘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그 길은 조용히 말해 주었다. 겨울의 끝자락은 이미 봄의 입구이고, 끝이라 여겼던 자리는 다른 시작의 문턱이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봄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일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 봄길이 되어 걸어가는 마음이다. 길이 보이지 않아도 다시 길을 찾아내는 마음,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마음, 끝났다고 생각되는 순간에도 또 다른 시작을 향해 발을 내딛는 마음을 싹틔울 수 있는 생명력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삶을 앞으로 움직이게 하는 힘은 언제나 거기에서 나온다.
3월의 길 위에서 나는 봄의 걸음 소리를 들었고, 손짓도 보았다. 아직 완전히 찾아온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오고 있는 봄이었다. 우리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봄은 멀리서 오는 계절이 아니라, 끝내 걸음을 멈추지 않고, 겨울을 건너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먼저 시작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