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산업전환의 시대는 단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곧 지역의 생존 문제이며, 고용의 문제이고, 청년의 정착과 이탈, 산업의 존속과 재편, 그리고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가르는 문제다.
자동화와 디지털 전환, 탄소중립을 중심으로 한 산업 질서의 변화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문제는 이 변화가 모든 지역에 똑같은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어떤 곳은 새로운 산업 기회를 얻지만, 어떤 곳은 기존 일자리의 기반이 흔들린다. 어떤 지역은 전환에 필요한 인력과 인프라를 갖추고 있지만, 어떤 지역은 변화의 파고를 먼저 맞고도 대응 수단이 부족하다. 이런 점에서 12일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6년 제1차 지역고용아카데미’는 단순한 행정 행사를 넘어, 이제 지역 고용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바뀌어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중요한 신호라고 할 만하다.
고용노동부는 이날 전국 지방자치단체 일자리 담당자와 수행기관 관계자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지역일자리 정책 관련 국정과제 추진 방향을 공유하고, 인공지능 기반 디지털 전환과 탄소중립 등 산업구조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지역이 주도적으로 고용 위기에 대응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할 수 있는 정책 방향을 논의했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는 중앙정부가 지역과 정보를 공유하는 정책 설명회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행사의 진짜 의미는 그보다 더 깊다. 그것은 기존의 지역 일자리 정책이 더 이상 과거 방식으로는 작동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정책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그동안 지역 일자리 정책은 적지 않은 경우 외형적 성과 중심으로 운영되어 왔다. 취업자 수가 얼마나 늘었는가, 몇 명이 참여했는가, 몇 개의 사업을 집행했는가. 이런 수치들이 성과의 중심에 놓였다. 물론, 숫자도 필요하다. 그러나 숫자만으로는 지역 고용의 실제 건강성을 설명할 수 없다.
청년들이 지역에 남아 장기적으로 일할 수 있는 일자리인지, 고용의 질은 개선되고 있는지, 산업전환의 충격에 지역이 스스로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 지역 간 협업 구조는 작동하는지와 같은 질문은 종종 뒤로 밀려나 있었다.
이번 아카데미가 과거의 단순한 취업자 수 중심 접근에서 벗어나 일자리의 질적 개선을 중심에 두겠다고 밝힌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이것은 숫자의 정치에서 구조의 정치로, 단기 실적에서 지속 가능한 지역 고용 생태계로 시선을 옮기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이번 아카데미를 계기로 기초지자체 간 협업과 초광역 단위 연계를 통해 정책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지역 고용 상황 악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버팀이음 프로젝트’를 본격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고용위기 선제대응지역 지정과 연계해 지역의 고용 안전망을 강화하는 방향도 공유했다.
이 대목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왜냐하면, 오늘의 지역 고용 위기는 한 시·군·구 안에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산업단지, 교통망, 생활권, 교육권, 노동 이동은 이미 행정구역의 경계를 넘어 움직인다. 그런데 정책은 여전히 좁은 행정 단위 안에 갇혀 있으면, 실제 문제와 제도 사이에 커다란 틈새가 생길 수밖에 없다.
초광역 연계와 지자체 협업을 강조한 이번 방향은 적어도 그 문제를 제대로 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지방자치단체가 보다 자율적으로 지역 맞춤형 고용정책을 기획하고 집행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점이다.
(가칭) 지역고용활성화법 추진을 위해 지역의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겠다는 방침은, 지역을 단순한 사업 수행 단위가 아니라, 정책 설계의 주체로 세우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이는 매우 필요한 전환이다. 지역의 고용 문제는 중앙정부가 일률적으로 설계한 틀만으로는 충분히 해결되지 않는다.
지역마다 산업 구조가 다르고, 인구 흐름이 다르며, 청년 유출의 원인도 다르고, 필요한 인력 정책도 다르다. 그런데도 정책이 획일적이면, 지역은 늘 ‘집행은 하되 주도는 하지 못하는 위치’에 머물게 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지역을 행정의 말단이 아니라, 전략의 출발점으로 보는 발상의 전환이다.
이번 행사에서 ‘인공지능 시대, 인공지능과 함께하는 일자리 정책’ 특강이 마련된 것도 상징적이다. AI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산업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채용, 생산, 물류, 서비스, 행정, 교육, 의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렇다면 지역 일자리 정책도 단순히 기존 산업 일자리를 붙잡는 데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기술의 변화가 어떤 직무를 대체하고, 어떤 새로운 역량을 요구하며, 어떤 직업군을 재편하는지를 지역 차원에서 이해하고 대비해야 한다. AI 시대의 일자리 정책은 단지 “사라질 일자리를 막는 정책”이 아니라, “변화하는 산업 구조 안에서 지역이 어떤 새로운 일과 역량을 만들어 낼 것인가”를 묻는 정책이어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의제는 청년의 지역 정착이다. 많은 지역이 청년 유출을 걱정한다. 그러나 청년은 단지 일자리 하나만 보고 지역을 떠나거나 남지 않는다. 일터와 함께 삶터가 있어야 하고, 문화와 관계망이 있어야 하며,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환경이 있어야 한다.
이번 아카데미가 지역 특성에 맞는 일자리 모델 발굴과 함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협력해 청년의 일터와 삶터를 함께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은 드디어 지역 고용 문제를 일자리 숫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조건 전체의 문제로 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것이야말로 지역 일자리 정책이 더 이상 고용 행정에만 머물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지역의 고용은 주거, 교통, 교육, 돌봄, 문화, 산업 전략과 함께 움직인다. 청년이 남는 지역은 일자리만 있는 지역이 아니라, 살 만한 이유가 있는 지역이다.
임영미 고용정책실장은 “AX(AI Transformation·AI 전환), GX(Green Transformation·녹색전환)로 대표되는 산업전환의 거대한 변화 속에서 지역이 스스로 현장의 위기를 진단하고 대응 전략을 마련하는 노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라고 밝혔다. 이 말은 단순한 당부를 넘어, 오늘의 정책 과제를 압축하고 있다.
지역은 더 이상 변화의 결과를 뒤늦게 감당하는 수동적 공간이어서는 안 된다. 지역이 스스로 진단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필요한 연계를 설계하며, 위기에 앞서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중앙정부의 역할은 모든 것을 대신 정하는 데 있지 않고, 지역이 그렇게 움직일 수 있도록 제도와 재정, 정보와 연계 구조를 설계하는 데 있어야 한다.
물론 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역 주도 일자리 혁신이 진짜가 되려면, 몇 가지 조건이 따라야 한다. 이번 지역고용아카데미가 던지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이것이다.
첫째, 지역 자율성은 선언이 아니라, 실제 권한과 재정, 제도 설계 권한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둘째, 일자리의 질적 개선을 평가하겠다면 그에 맞는 새로운 성과 지표도 마련되어야 한다.
셋째, 지역 간 협업과 초광역 연계는 단순한 회의체가 아니라, 실제 공동사업과 공동 대응 체계로 이어져야 한다.
넷째, AI와 산업전환 대응은 교육훈련과 기업 지원, 인력 재배치 정책이 함께 움직일 때만 실효성을 갖는다.
다섯째, 청년 정착 문제는 고용부 혼자의 과제가 아니라, 국토, 교육, 복지, 산업 정책과 결합된 종합 과제로 다뤄져야 한다.
이제 지역 일자리 정책은 단순히 일자리를 ‘만드는’ 정책이 아니라, 지역이 변화 속에서도 버티고 전환하며 살아남을 수 있는 고용 생태계 전체를 설계하는 정책이 되어야 한다. 일자리 몇 개를 더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역이 스스로 위기를 읽고, 서로 연결하고, 산업 변화에 대응하며, 청년에게 남을 이유를 만들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진짜 지역 주도 일자리 혁신이다. 산업전환의 시대에 가장 위험한 지역은 변화가 없는 지역이 아니라, 변화에 대한 해석 권한을 스스로 갖지 못한 지역이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지원 확대가 아니라, 지역이 자기 문제를 자기 언어로 말하고 자기 전략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지역은 더 이상 고용정책의 대상이 아니라, 고용정책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번 아카데미가 그 전환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