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위기의 순간에 누가 곁에 서 있었는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 더구나 그 도움이 목숨 하나를 건 희생이었다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역사는 종종 전쟁이 끝난 뒤의 침묵 속에서 은인을 잊고, 감사는 기념식의 문장으로만 남는다.
이런 점에서 한국늘사랑회 김상기 회장과 밥상공동체 허기복 대표가 에티오피아를 찾아 6·25전쟁 참전용사들과 그 가족들을 직접 위로한 일은 단순한 해외 봉사 일정이 아니다. 이것은 한국 사회가 오래도록 갚아야 할 도의적 빚을 다시 확인하는 행위이며, 기억이 행동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감사가 진실해진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장면이다.
한국늘사랑회와 밥상공동체는 지난 3월 13일부터 21일까지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와 아다마, 하라르 지역을 방문해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을 위해 싸웠던 에티오피아 ‘강뉴(Kagnew·에티오피아 말로 초전 박살)’부대 용사들과 그 가족들을 만났다.
이 여정은 두 단체가 10개월 동안 준비해 온 봉사 일정으로, 현지에서는 참전용사와 미망인들에게 음식 대접을 하고 용돈과 선물을 전달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들은 또한 아프리카 연합(African Union) 본부를 방문해 사회복지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이번 방문에서 가장 가슴 아픈 사실은 6·25전쟁 참전용사들의 살날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6·25전쟁에 참전했던 에티오피아 용사 6,037명 가운데 현재 생존자는 47명뿐이다. 1년 전까지만 해도 58명이 생존해 있었지만, 그사이 11명이 세상을 떠났다. 253전 전승, 포로가 된 병사 0명이라는 전설적 기록을 남긴 무적의 ‘강뉴부대’도 세월 앞에서는 예외일 수 없었다. 영웅의 이름은 오래 남지만, 영웅의 몸은 끝내 늙고 병들고 사라진다. 그래서 이번 방문은 늦지 않기 위해 더 절실한 만남이었다.
아디스아바바에서 시작된 여정은 곧 더 깊은 감정의 자리로 이어졌다. 아다마 지역에서는 지난해 만났던 참전용사 가운데 일부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안타까움을 더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100세의 노인이 병마를 이겨내고 손자의 손을 잡고 나타나, 전쟁의 세월과 인간의 존엄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를 조용히 보여 주었다. 또 95세 참전용사 세 사람과 가족을 만나 음식을 나누고 선물을 전하는 자리에서는 한국전쟁이 책 속 사건이 아니라,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의 삶이라는 사실이 다시 선명해졌다.
하라르 지역에서의 만남은 더욱 숙연했다. 앞을 보지 못하는 97세 참전용사는 눈 대신 마음으로 간직해온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였다. 전쟁 중 부산에서 한국인 여성과 결혼했던 당시의 기록이었다. 총성과 포연 속에서도 사랑과 우정이 존재했다는 증거 앞에서, 전쟁은 단지 국가 간 충돌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도 포함하는 역사라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또 귀가 들리지 않는 참전용사의 미망인은 손녀와 함께 커피와 빵을 정성껏 준비해, 먼 길을 온 한국 방문단을 맞았다. 도움을 받는 자리가 오히려 더 큰 환대를 베푸는 장면으로 바뀌는 순간, 봉사는 시혜가 아니라 인간적 만남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들의 6·25전쟁 참전 이야기가 더 큰 울림을 갖는 이유는 에티오피아가 한국전쟁 때 보여 준 선택이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멀고도 낯선 나라의 전쟁에 와서 싸운다는 것은 외교적 수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자유와 연대에 대한 결단이었고, 국제사회 속에서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위해 흘린 피의 증언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 희생을 얼마나 자주 기억하는가. 교과서의 한 줄, 기념행사의 한 순서, 외교 수사의 한 표현으로만 남겨 두고 있지는 않은가.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역사를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소비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런 방문은 중요하다. 참전의 기억은 기록으로 보존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살아 있는 당사자를 찾아가 손을 잡고, 식사를 나누고, 이름을 불러 주고, 감사의 말을 직접 전할 때 비로소 역사는 현재형이 된다.
김상기 회장이 “몇 년 후면 이 영웅들을 더는 뵙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라고 말한 대목은 그래서 묵직하다. 감사는 언젠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 지금 하지 않으면 영영 늦을 수 있는 일이다.
동시에 이 방문은 한국 사회의 성숙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전쟁의 폐허에서 도움을 받던 나라가 이제는 그 은혜를 기억하고 다시 찾아가 위로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는 사실은 작지 않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성숙이 되려면, 이런 만남이 일회성 감동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남은 참전용사들에 대한 지속적 지원, 가족들에 대한 돌봄, 역사 교육 속에서의 재조명, 정부와 민간이 함께하는 체계적 예우가 뒤따라야 한다. 기억은 감동으로 끝날 때보다 제도로 이어질 때 더 오래간다.
전쟁은 끝났지만, 은혜는 끝나지 않았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평화가 누구의 희생 위에 서 있는지를 잊지 않는 일은 단순한 예의가 아니라, 국가의 품격에 관한 문제다. 에티오피아 강뉴부대의 이름은 오랫동안 한국전쟁사의 빛나는 기록으로 남아 왔다. 그러나 진정한 기억은 기록의 보관이 아니라, 사람을 향해 다시 걸어가는 발걸음 속에서 드러난다.
“아메세그날레후(አመሰግናለሁ)” 우리말로 “감사하다”라는 그 한마디 속에는 전쟁의 시간과 봉사의 시간이 함께 포개져 있었다. 먼 나라의 새벽 공기 속에서 한국의 손길이 에티오피아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누구에게 빚지고 있는지를 잊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과거를 위한 일이 아니라, 앞으로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하는가를 스스로 묻는 일이기도 하다. 참전용사들은 점점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그렇다면 남은 시간 동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분명하다. 더 자주 찾아가고, 더 정성껏 기억하고, 더 오래 책임지는 일이다. 감사는 말보다 늦지 않는 손길로 증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