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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투데이 뉴스]
시니어투데이 뉴스뉴스2026. 3. 18. 오후 4:16:16

풍요로운 삶이란

박시우 작가
풍요로운 삶이란

사람들은 흔히 풍요를 소유의 크기로 판단한다. 얼마나 넓은 땅을 가졌는가, 얼마나 많은 재산을 모았는가, 얼마나 많은 것을 자기 이름 아래 묶어 두었는가에 따라 삶의 성공과 풍요를 가늠하려고 한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많이 가진 사람이 곧 풍요로운 사람이고, 적게 가진 사람이 곧 가난한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가. 겉으로 보이는 소유의 양이 삶의 넉넉함을 그대로 증명해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풍요와 소유는 전혀 다른 차원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어부는 땅 한 평이 없어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자기 명의로 된 넓은 토지가 없더라도 삶의 터전을 잃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삶을 떠받치는 것은 등기된 땅이 아니라, 늘 그 앞에 펼쳐져 있는 드넓은 바다이기 때문이다. 바다는 누구 개인의 소유가 아니지만, 누구에게나 넉넉함을 내어준다. 

바다는 손에 쥘 수 없으나 삶을 먹여 살리고, 소유할 수 없으나 존재 자체로 사람을 살게 한다. 이 단순한 사실은 우리에게 중요한 깨달음을 준다. 반드시 내 것으로 묶어 두어야만 내 삶에 유익한 것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인간이 누리는 많은 것들은 애초부터 소유의 대상이 아니었다. 햇빛도, 바람도, 계절도, 하늘도, 바다도 본래는 누구의 이름으로 등록될 수 없는 것이다. 자연은 인간의 탐욕 앞에서도 끝까지 공동의 선물로 남아 있다. 물론, 현실의 삶에서 소유는 필요하다. 집도 필요하고 재산도 필요하며, 삶을 지탱할 기반도 필요하다. 문제는 소유 그 자체가 아니라, 소유를 삶의 유일한 안전과 의미로 착각하는 태도에 있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더 많이 움켜쥐려 하고, 잃을까 두려워 더욱 불안해진다면 그것은 풍요가 아니라, 결핍의 또 다른 얼굴일 뿐이다.

생각해 보면 인간에게 영원토록 완전한 소유는 허락되지 않는다.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듯이, 떠날 때도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 아무리 많은 땅과 재산을 가졌다고 해도 인생의 마지막 순간 앞에서는 모두 손에서 놓아야 한다. 이 자명한 사실을 알면서도 사람은 평생 더 많이 쌓고 더 오래 붙들기 위해 자신을 소모한다. 마치 손에 넣는 양이 곧 존재의 무게가 되는 것처럼 살아간다. 그러나 끝내 다 놓고 가야 하는 것을 붙들기 위해 삶 전체를 허비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가난한 삶이 아닐까.

진정한 풍요는 많이 소유하는 데서 오지 않는다. 오히려 소유의 한계를 아는 데서 시작된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며,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질 수도 없고, 가졌다 해도 끝내 지킬 수 없다. 이 한계를 아는 사람은 집착에서 조금씩 벗어난다. 그리고 바로 그때 비로소 삶을 누릴 줄 아는 여유를 갖게 된다. 

자연을 바라볼 줄 알고, 계절의 변화를 느낄 줄 알며, 자기 앞에 놓인 하루의 기쁨을 알아보게 된다. 풍요로운 사람은 반드시 부자가 아니다. 그는 누릴 줄 아는 사람이다. 가진 것의 총량보다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넉넉한 사람이다.

반대로 아무리 많이 가졌어도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결코 풍요로울 수 없다. 욕심은 채워질수록 더 커지는 성질을 지닌다. 하나를 얻으면 둘을 원하고, 둘을 얻으면 셋을 원한다. 만족은 늘 다음 단계로 미뤄지고, 현재의 삶은 끝없는 결핍 속에 갇힌다. 그런 사람은 넓은 집에 살아도 좁은 마음으로 살고, 많은 재산을 가져도 늘 불안 속에서 산다. 손에 쥔 것은 많지만, 마음은 비어 있는 것이다. 가난이란 소유의 부족이 아니라, 만족의 상실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오늘의 사회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더 가지라고 말한다. 더 넓은 집, 더 높은 자리, 더 비싼 물건, 더 화려한 이력을 가지라고 부추긴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지 못하면 뒤처진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경쟁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삶의 본질이 소유의 확장보다 존재의 깊이에 있다는 사실이다.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보다 얼마나 깊이 누리며 살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얼마나 크게 소유했는지보다 얼마나 맑은 마음으로 세상을 맞이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풍요로운 삶이란 결국 내 것의 목록을 늘리는 삶이 아니다. 내 앞에 이미 주어진 것들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감사함으로 누릴 줄 아는 삶이다. 바다를 소유하지 않아도 바다 덕분에 살 수 있듯이, 우리는 소유하지 않은 것들 속에서도 충분히 은혜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다. 하늘 한 조각, 계절의 바람, 따뜻한 햇살, 곁에 있는 사람들, 하루의 평안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삶의 자산이다.

한계를 깨닫는 사람은 욕심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 지나친 탐욕이 결국 자신을 더 궁핍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런 사람은 덜 움켜쥐고, 더 누린다. 덜 집착하고 더 감사한다. 바로 이런 사람이 참으로 풍요로운 사람이다.

평생 욕심의 그물에 갇혀 허우적거리다가 떠날 것인가, 아니면 소유의 한계를 넘어 삶을 기쁘게 누리다가 떠날 것인가. 풍요의 기준을 바꾸지 않는 한 인간은 끝내 가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진정한 풍요는 곳간의 크기에 있지 않다. 그것은 삶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넉넉함, 그리고 소유하지 않더라도 기꺼이 누릴 줄 아는 자유 속에 있다.

박시우 작가
박시우 작가
psy@newsnetp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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