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영상위원회는 지난 24일 영상산업센터에서 MBC C&I,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영화진흥위원회와 함께 영화·영상 산업 AI 교육 인재 양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은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AI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영상 콘텐츠 제작 방식을 모색하고, 지역 기반 창작 생태계를 활성화하기 위해 마련됐다.
협약의 주요 내용은 지역 AI 영화·영상 분야 창작 인력 양성과 인프라 구축, AI 영화·영상 콘텐츠의 상영 및 홍보 협력, AI 콘텐츠 고도화를 위한 연구 협력 등이다.
기술은 늘 산업의 판을 바꾸어 왔다. 그러나 기술이 산업을 바꾸는 속도보다, 사람이 그 변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속도는 종종 더디다. 지금 영화·영상 산업이 바로 그런 전환점 위에 서 있다.
인공지능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실험 도구가 아니다. 이미 기획, 시각화, 편집, 후반작업, 콘텐츠 제작 전반에 걸쳐 새로운 가능성과 불안을 동시에 불러오고 있다. 이런 시기에 중요한 것은 기술 그 자체를 과장하거나 두려워하는 일이 아니라, 그 기술을 어떻게 창작의 언어로 바꾸고, 누가 그것을 다룰 인재가 될 것인가를 준비하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부산영상위원회가 MBC C&I,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영화진흥위원회와 함께 체결한 ‘영화·영상 산업 AI 교육 인재 양성’ 업무협약은 단순한 기관 사이 협력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것은 AI 시대의 영상산업이 결국 사람을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답변이기 때문이다.
이번 협약이 눈에 띄는 이유는 역할 분담이 비교적 분명하다는 점이다. 부산영상위원회는 지역 창작자 발굴과 교육을 맡고, MBC C&I는 AI 기술 연구개발을 담당한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AI 영화 상영과 글로벌 네트워킹 플랫폼 역할을 하고, 영화진흥위원회는 정책 수립과 지역 AI 산업 진흥을 맡는다.
즉 교육, 기술, 상영, 정책이 따로 흩어지지 않고 하나의 협력 구조 안에서 연결되도록 설계한 셈이다. 이는 AI 시대의 콘텐츠 산업이 단순히 기술자 몇 명을 확보한다고 움직이는 분야가 아니라, 교육과 산업, 플랫폼과 제도까지 함께 맞물려야 성장할 수 있다는 현실을 정확히 짚고 있다.
이 협약이 던지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분명하다. AI는 영화·영상 산업의 적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창작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강력한 도구라는 점이다. 물론, 여기에는 경계도 필요하다.
AI를 둘러싼 논의는 늘 기대와 우려가 함께 간다. 누군가는 창작의 민주화를 말하고, 누군가는 인간 창작의 고유성이 훼손될 것을 걱정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논쟁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창작 현장에서 어떤 역량이 필요한지를 구체적으로 준비하는 일이다.
기술을 모른 채 두려워하는 태도도 위험하지만, 기술만으로 창작이 완성된다고 믿는 태도 역시 위험하다. 결국 필요한 것은 AI를 이해하는 창작자, 창작의 맥락을 이해하는 기술자, 그리고 이 둘을 연결하는 교육 체계다.
부산이라는 도시의 맥락에서 보아도 이번 협약은 의미가 크다. 부산은 오랫동안 영화도시라는 상징을 쌓아 왔다.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해 촬영 지원, 제작 인프라, 지역 창작자 육성 등 영상산업 생태계의 여러 축을 갖추어 왔다. 그
러나 이제 영화도시의 경쟁력은 단순히 촬영이 많이 이루어지는가에 머물지 않는다. AI 기반 콘텐츠 시대에 어떤 인재를 키우고, 어떤 실험을 허용하며, 어떤 플랫폼을 선제적으로 구축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 협약은 부산이 과거의 영화도시를 넘어 미래의 영상기술·창작 융합도시로 나아갈 가능성을 보여 준다.
특히, 지역 기반 창작 생태계를 강조한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AI 기술은 자본과 플랫폼이 집중된 대도시나 대기업 중심으로 먼저 확산되기 쉽다. 이런 흐름 속에서 지역 창작자는 기술 격차와 정보 격차를 동시에 겪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부산에서 지역 창작자를 발굴하고 교육하며, AI 기반 제작 역량을 키우겠다는 방향은 바람직하다. 여기에는 단순한 인력 양성을 넘어, 지역 문화산업의 격차를 줄이고 창작 기회의 불균형을 완화하겠다는 의미도 들어 있다. 기술 전환의 시대일수록 더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공공적 개입이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이 협력 구조 안에 들어와 있다는 점도 상징적이다. AI 영화·영상 콘텐츠는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을 보여 주고, 토론하고, 시장과 연결하며, 국제적 네트워크 안에서 평가받게 해야 한다. 영화제는 바로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상영과 홍보, 글로벌 교류의 장이 확보될 때 창작은 실험에 머무르지 않고 생태계의 일부가 된다. 기술이 만들어 낸 결과물을 관객과 산업이 만나는 자리까지 연결하는 것은 AI 콘텐츠 시대에 더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협약식 이후 열린 ‘AI가 바꾸는 영상산업의 미래’라는 특강이 큰 호응을 얻었다는 대목도 의미심장하다. 현장은 이미 변화를 궁금해하고 있고, 배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산업의 전환은 정책 문서보다 현장의 학습 열기에서 더 빨리 시작된다. 사람들이 모여 질문하고, 새로운 도구를 배우고, 기존의 제작 방식을 다시 생각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변화는 현실이 된다.
물론 과제도 분명하다. AI를 활용한 영화·영상 제작이 실제로 어떤 교육 커리큘럼으로 구체화될 것인지, 지역 창작자들이 얼마나 실질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지, 저작권과 윤리, 창작자 권리 보호 문제는 어떻게 다룰 것인지와 같은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AI 인재 양성은 단순한 툴 사용 교육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창작의 철학, 법과 윤리, 제작 현장의 실무, 산업 연결성까지 함께 다루는 입체적 교육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AI는 단지 유행어가 아니라, 실제 창작 역량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