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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투데이 뉴스]
시니어투데이 뉴스추천뉴스2026. 3. 24. 오후 3:05:00

징비록의 교훈으로 다시 읽는 봄철 산불 대응

산불은 이미 여러 차례 경고를 보낸 재난이다 초동 대응은 ‘과잉’일 만큼 강해야 한다

안순모 기자
징비록의 교훈으로 다시 읽는 봄철 산불 대응
산림청이 제공한 자료 사진

산불은 자연재해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태도를 시험하는 재난이기도 하다. 우리는 해마다 봄이 오면 산불 조심을 말한다. 그러나 진정 중요한 것은 구호가 아니라, 그 말이 얼마나 준비와 행동으로 이어지느냐다. 재난을 기억하는 사회와 잊는 사회의 차이는 결국 다음 피해 규모에서 드러난다.

재난은 반복될 때 비로소 한 사회의 수준을 묻는다. 한 번의 불행은 예외일 수 있지만, 비슷한 피해가 거듭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자연만의 문제가 아니다. 준비의 부족, 기억의 결핍, 경계의 이완이 함께 만든 결과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봄철 산불을 말하며 징비록을 떠올리는 일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징비록은 지나간 잘못을 징계하여 뒤의 화를 삼가자는 뜻을 품은 책이다. 오늘의 산불 대응 역시 마찬가지다. 불이 지나간 자리를 애도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고, 그 아픔을 다음 재난을 막는 준비로 바꾸어야 한다.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강릉산림항공관리소 김정길 소장이 봄철 산불 예방과 대응을 징비록의 교훈과 연결해 강조한 문제의식은 바로 그 점에서 깊은 울림을 준다. 그의 기고를 정리해 보면 산불 예방에 대한 많은 지혜를 얻을 수 있다. 

김 소장은 공직자로서 읽어야 할 책을 묻는 신임 실무자에게 징비록, 백범일지, 난중일기, 사기 등을 권한 적이 있다고 회고한다. 특히, 징비록은 군 재직 시절 젊은 장교들에게 자주 선물했고, 최근에도 산림 조직을 떠나 다른 자리로 가는 젊은 공직자에게도 건넨다고 한다. 

이는 단지 고전을 읽으라는 권유가 아니다. 위기 앞에서 국가와 공직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배우라는 뜻에 가깝다. 그리고 그 문제의식은 2025년 봄철 산불이라는 참혹한 현실 속에서 다시 절박한 언어가 되었다.

다음과 같이 김 소장이 제시한 내용은 경험에서 우러난 매우 실제적 메시지다.

2025년 봄, 우리는 역대급 산불을 경험했다. 3월 21일 산청과 하동에서 시작된 산불은 이튿날 경북 안동과 의성으로 이어졌고, 이전까지 최대급 산불로 기억되던 2022년 울진에서 발생한 산불조차 상대적으로 작게 느껴질 만큼 거대한 피해를 남겼다. 

무엇보다 이 산불은 두 대의 헬기 추락과 공무원, 국민의 인명 피해라는 깊은 상처를 함께 남겼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누구도 쉽게 예측하지 못했던 극한 기상 조건 속에서 대응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2005년 양양산불로 낙산사를 잃었고, 2019년 고성과 강릉 옥계, 2022년 강릉 옥계와 동해·삼척, 2023년 강릉 난곡동 산불 등 동해안 일대의 대형산불을 여러 차례 경험해 왔다. 산불은 낯선 재난이 아니라, 이미 여러 번 경고를 보낸 재난이었다.

그래서 2026년 봄철 산불 조심 기간을 맞아 산림항공본부가 보이는 준비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국산 수리온 헬기에는 야간 영상 촬영이 가능한 장비(TK-8)가 추가로 장착되었고, 1만 리터급 담수 능력을 갖춘 CH-47(시누크)이 도입되었다. 

이미 2025년 대구 함지산 산불에서 야간 실전에 투입된 수리온 2대에 더해 S-64 1대, 새로 도입한 CH-47까지 야간 대응 장비를 갖추어 총 5대가 야간 산불에 대응할 준비를 마쳤다. 

여기에 해외 임차 헬기 5대를 전국에 추가 배치한 것은 2025년의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재난 대응에서 장비는 곧 시간이고, 시간은 곧 생명과 직결된다. 따라서, 이런 준비는 단순한 전력 보강이 아니라, 실패를 기억한 조직의 학습이라고 보아야 한다.

징비록의 핵심은 후회가 아니라 대비다. 서애 유성룡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은 뒤 자기 잘못과 국가의 허술함을 반성하며 후환을 막고자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우리는 잘 알려진 대로 그 몇 해 뒤 다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겪었다. 반성은 있었으나, 준비는 충분하지 않았던 탓이다. 

이 역사적 장면은 오늘의 산불 대응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재난을 겪고도 준비를 구조로 만들지 못하면, 기억은 금세 감상이 되고 만다. 그래서 김 소장이 징비록을 떠올린 것은 단순한 역사적 비유가 아니다. 산림항공본부가 2025년 대형산불로 큰 아픔을 겪었지만, 2026년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다시 준비했다는 말은 바로 그 징비의 정신을 행정과 현장 대응에 옮기려는 다짐으로 읽힌다.

그렇다면 대형산불을 막기 위한 핵심 대안은 무엇인가. 김 소장이 강조하듯 첫째는 신고의식이다. 산불은 초기 몇 분, 몇 시간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 국민이 산불을 발견했을 때 즉시 119나 산림청에 알리는 행동은 단순한 신고를 넘어 대형 재난을 막는 첫 번째 방어선이 된다. 

둘째는 초동 대응의 원칙이다. 산림청과 산림항공본부는 신고된 산불을 확인하는 즉시 강력하고도 압도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표현은 ‘과잉 대응’이다. 평소 같으면 지나치다고 보일 만큼 빠르고 강하게 움직여야 대형산불로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뜻이다. 

작은 불을 얕보는 순간, 큰불은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 말은 매우 중요하다. 재난 대응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과도한 경계가 아니라, 늦은 판단이다. 산불은 초기에 잡지 못하면 기상과 지형, 바람의 방향에 따라 순식간에 통제 불능 상태로 커질 수 있다. 

특히, 기후변화로 인해 봄철 산불은 과거보다 더 건조하고, 더 빠르고, 더 예측하기 어려운 양상을 띠고 있다. 그런 시대에는 “조금 더 지켜보자”라는 태도보다 “우선 막아야 한다”라는 태도가 오히려 더 합리적일 수 있다. 결국 과잉 대응은 낭비가 아니라, 최악의 피해를 막기 위한 보험에 가깝다.

안순모 기자
안순모 기자
asm@newsnetp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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