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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코리아 뉴스]
타임즈코리아 뉴스뉴스2026. 3. 25. 오후 1:00:23

둥지가 들려주는 이야기

박시우 작가
둥지가 들려주는 이야기

강변을 걷다가 문득 아까시나무 꼭대기를 올려다보니, 까치가 지어놓은 둥지가 눈에 들어왔다. 유난히 가시 돋친 가지들 사이, 그것도 가장 높고 위태로워 보이는 곳에 둥지를 튼 이유는 분명하다. 새에게 그곳은 불편한 자리가 아니라, 알과 새끼를 지키기 위한 가장 적절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눈에는 거칠고 위태롭게 보일지라도, 자연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가장 알맞은 자리를 찾아 생명을 잇는다. 저 둥지는 그저 새 한 마리의 보금자리가 아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것들이 어떻게 제 삶의 자리를 찾아가는지를 보여 주는 작은 증언이다. 

생각해 보면 인간의 삶도 다르지 않다. 사람 역시 저마다의 둥지를 틀고, 그 안에서 생명을 품고, 세대를 이어간다. 자연 속 모든 존재가 자신의 조건 안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듯, 인간 또한 주어진 환경과 조건 속에서 살아남고 살아 내기 위해 애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 하나와 마주하게 된다. 자연을 자연답게 하는 것은 무엇이며,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야말로 교육의 본질이어야 한다.

문제는 우리가 오랫동안 자연의 원리를 지나치게 단순한 공식으로 오해해 왔다는 데 있다. 자연은 곧 적자생존(適者生存)이며 약육강식(弱肉强食)이라는 말이 너무 쉽게 통용되었다. 그리고 그 해석을 인간 사회에도 그대로 들여와, 사람 사이의 관계마저 끝없는 경쟁과 승패의 논리로 설명하려 하였다. 여기에서 많은 갈등과 다툼이 비롯되었다. 

자연의 세계를 피상적으로 읽은 결과를 인간의 삶의 원리로 오해한 것이다. 그러나 자연은 단순히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누르는 질서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자연은 각 존재가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치열한 현장이며, 동시에 서로 다른 존재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리를 이루어 가는 공존의 장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종의 기원 톺아보기』에서 신현철 교수가 제시한 해석은 새삼 깊은 울림을 준다. 신 교수는 흔히 ‘생존을 위한 투쟁’ 또는 ‘경쟁’으로 번역되던 것을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번역했다. 

대학원 시절부터 60세에 이르기까지 『종의 기원』 번역에 힘을 기울인 한 학자의 오랜 사유와 땀 끝에서 길어 올린 해석이라는 점에서 더욱 뜻깊다. ‘투쟁’과 ‘경쟁’이라는 말에는 상대를 이겨야 한다는 긴장과 대립의 의미가 강하게 담긴다. 반면, ‘몸부림’이라는 말에는 한 존재가 살아남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절실함이 담겨 있다. 이 차이는 작지 않다.

다윈이 말하고자 한 본래의 뜻을 전체 맥락 속에서 살펴보면, 자연은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한 전쟁터라기보다 각자가 제 삶을 이어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자리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은 남보다 앞서기 위해서만 사는 존재가 아니다. 각자 자신이 놓인 환경과 조건 속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감당해 내는 존재이다. 

교육은 바로 그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 누가 더 빨리, 더 높이, 더 많이 차지하느냐만을 묻는 교육이 아니라, 각자가 어떤 자리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성찰하게 하는 교육이어야 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타인을 밀어내는 경쟁의 기술이 아니라, 자기 삶의 자리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품위에서 이루어진다.

신현철 교수는 이러한 삶의 태도를 생물학적 차원에서 ‘생태적 지위’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생태적 지위란 어떤 생물이 생태계 안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위치를 뜻한다. 같은 숲에 살아도 어떤 새는 높은 가지에서, 어떤 곤충은 나무껍질 아래에서, 어떤 풀은 그늘에서, 어떤 꽃은 햇빛이 잘 드는 자리에서 제 몫을 감당한다. 

그들은 각자가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 안에서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살아간다. 인간 역시 그러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각기 다른 특성과 존엄을 지닌 존재이며, 그에 따라 서로 다른 삶의 자리와 책임을 갖는다. 중요한 것은 남의 삶을 모방하는 일이 아니라, 자기 삶의 생태적 지위를 찾아 그것을 펼쳐나가는 성실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보람과 긍지를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일이다.

오늘 우리의 교육은 이 점을 얼마나 진지하게 가르치고 있는가. 교육이 한 사람의 고유한 가능성을 발견하게 하기보다, 모두를 하나의 잣대로 줄 세우는 데 익숙해져 있지는 않은가. 경쟁이 삶의 전부인 듯 말하고, 뒤처지지 말아야 한다는 불안을 끊임없이 주입하며, 타인과 비교하는 기술을 훈련하는 데 몰두하고 있지는 않은가.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자연을 오해한 데서 비롯된 인간 교육의 왜곡일 수 있다. 자연은 결코 모든 존재를 하나의 기준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자연은 저마다 다른 자리와 방식으로 살아가는 생명들의 세계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교육도 마땅히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아까시나무 꼭대기에 지어진 새 둥지를 바라보며 강변을 걷노라니, 3월 하순의 바람은 아직 차갑다. 그러나 곧 환하게 피어날 벚꽃을 생각하게 된다. 머지않아 매미 소리로 가득해질 강변의 여름도 함께 떠오른다. 계절은 저마다의 순서대로 오고, 생명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기 자리를 지켜 낸다. 

그러니 우리 역시 조급할 필요가 없다. 남의 봄을 부러워하기보다 나의 계절을 살아 내고, 남의 둥지를 흉내 내기보다 내 삶의 자리를 정성껏 지어 가면 된다. 높고, 가시 많은 나뭇가지 사이에 제 둥지를 틀어 놓은 까치처럼, 자연은 오래전부터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조용히 가르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박시우 작가
박시우 작가
pys@newsnetp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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