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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아카이브 뉴스]
프레스아카이브 뉴스뉴스2026. 3. 24. 오후 3:57:45

기다림이란

박시우 작가
기다림이란

기다림은 아직 손에 쥐어지지 않은 시간을 견디는 일이다. 이루어진 것은 분명한 것이다. 하지만,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흔들린다. 그래서 기다림의 시간은 언제나 미완성이다. 완성된 결과 앞에서는 설명이 가능하지만, 기다림의 한가운데서는 누구도 쉽게 단언할 수 없다. 

될 것인지, 되지 않을 것인지, 이 시간이 열매를 맺을지 아니면 허공으로 흩어질지 사람으로서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기다린다는 것은 아직 닫히지 않은 가능성 앞에 마음을 두는 일이다. 

기다림은 단순한 지연이 아니다. 그것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을 향해 마음을 열어 두는 태도이며, 보이지 않는 미래를 현재의 삶 안으로 끌어당기는 힘이다.

사람들은 흔히 겨울을 인내의 계절이라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겨울은 춥고, 메마르고, 추위가 오래 머무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같은 겨울을 두고 봄을 기다리는 시간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바로 여기서 삶은 달라진다. 추위를 견디는 사람과 봄을 기다리는 사람은 같은 계절 속에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시간을 살아간다. 하나는 버티는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준비하는 시간이다. 하나는 겨울을 사라져야 할 고통으로 바라보고, 다른 하나는 겨울을 다가올 생명을 예비하는 시간으로 해석한다. 

현실은 같을지 몰라도 마음의 해석은 다르다. 그리고 사람의 삶은 객관적 조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석의 힘은 종종 현실의 무게를 바꾸고, 같은 하루를 전혀 다른 의미의 하루로 만들기도 한다.

계절의 순환에 따라 어차피 봄은 온다고 말할 수도 있다. 자연은 제 길을 따라 흐르고,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자연의 법칙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같은 봄이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스쳐 가는 계절일 뿐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오래 기다린 끝에 마침내 맞이한 선물처럼 다가온다. 

어차피 오는 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내가 기다렸기에 더 깊이 맞이한 봄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 차이는 단순한 감상의 차이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태도에서 비롯되는 차이이며, 삶을 받아들이는 방식의 차이이다. 

봄은 누구에게나 오지만, 봄의 깊이는 누구에게나 같지 않다. 기다림으로 맞이한 봄은 그냥 지나가는 봄보다 훨씬 더 선명하고,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이것이 바로 삶의 신비다. 같은 현실, 같은 시간, 같은 계절 속에서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의미를 살아 낸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신비는 막연한 감상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 안에는 분명한 원리가 있다. 기다림은 사람의 마음을 형성하고, 마음은 해석을 만들며, 해석은 결국 삶의 방향을 바꾼다. 이것은 시적인 말이면서도 동시에 매우 실제적인 말이다. 

어떤 사람은 기다림 속에서 조급함을 키우고, 어떤 사람은 기다림 속에서 시야를 넓힌다. 어떤 사람은 기다림 속에서 자신을 소진시키고, 어떤 사람은 기다림 속에서 자신을 성숙하게 한다. 기다림의 시간이 똑같다고 해서 그 열매까지 같지는 않다. 기다림은 단지 결과를 앞두고 머무는 시간이 아니라, 그 결과를 맞이할 사람을 빚어 가는 시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다림은 수동적인 시간이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멈춰 있는 시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장 깊은 변화가 일어나는 시간이다. 씨앗이 땅속에서 어둠을 통과하며 싹틔울 준비를 하듯, 사람도 기다림 속에서 준비해야 한다. 

당장 드러나지 않기에 무의미해 보일 뿐, 기다림의 시간은 언제나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 그것은 인내일 수도 있고, 통찰일 수도 있고, 겸손일 수도 있다. 때로는 욕심이 벗겨지고, 때로는 조급함이 정리되며, 때로는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게 된다. 

기다림은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아니라, 시간을 통과하며 자기 자신을 새롭게 해석하는 일이다. “당신에게 기다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단순한 감상적 물음이 아니다. 그것은 당신이 삶을 어떤 색으로 칠하고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기다림을 공백으로 보는 사람의 삶은 쉽게 메마를 수 있다. 그러나 기다림을 가능성으로 보는 사람의 삶은 비록 더디더라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기다림을 고통으로 여기는 사람은 오늘을 잃어버리기 쉽고, 기다림을 준비로 여기는 사람은 아직 오지 않은 내일 속에서도 현재를 살아 낼 힘을 얻는다. 

기다림에 대한 답변은 곧 삶에 대한 해답이 된다. 그 답변이 바로 한 사람의 태도이고, 그 태도가 그의 삶의 색깔이 된다. 기다림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불안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바로 그래서 희망의 다른 이름이 될 수도 있다. 

이미 끝난 것에는 기다림이 필요 없다. 기다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증거이고, 아직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신호이다. 그러므로 기다림은 결핍이 아니라, 여백일 수 있다.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채워질 수 있는 자리일 수 있다.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그 시간을 해석하느냐에 따라, 기다림은 상실의 시간이 되기도 하고 창조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인생은 종종 결과보다 그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에 의해 더 깊이 설명된다. 그래서 기다림은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삶을 해석하고 다시 빚어 가는 조용하지만 아주 강한 힘이라는 것이다.

박시우 작가
박시우 작가
psy@newsnetp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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