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투표권을 법에 적어 두는 데서 완성되지 않는다. 실제로 투표할 수 있어야 비로소 권리가 된다. 그런 점에서 재외국민 선거는 늘 불편한 질문을 남겨 왔다. 제도는 존재하지만, 접근은 어렵고, 참정권은 보장된다고 말하지만, 실제 참여에는 너무 많은 거리와 절차, 시간과 비용이 따른다.
해외에 사는 국민이 선거에 참여하기 위해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해야 하고, 사전등록을 놓쳤다는 이유로 발길을 돌려야 하며, 본인 확인을 위해 역사적 상처가 남은 신분증 제시를 요구받는 현실이라면, 그것은 형식적 권리는 있어도 실질적 권리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재외동포청이 국회에서 연 재외선거 제도 개선 토론회는 단순한 제도 논의가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경계를 어디까지 넓힐 것인가를 묻는 자리로 읽힌다.
재외동포청(청장 김경협)은 3월 2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재외선거 제도 개선 토론회를 열었다. 이번 토론회는 재외국민의 참정권을 더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우편투표와 전자투표 도입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재외동포청은 2028년 국회의원 선거부터 현재의 현장 투표 방식에 더해 우편투표나 전자투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학계와 재외동포 사회의 의견을 모아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전달하기 위한 취지로 마련됐다.
사회는 윤종빈 명지대학교 교수(한국정치학회회장)가 맡았고, 유성진 이화여자대학교 스크랜튼 학부 교수와 문은영 건국대학교 시민정치연구소 연구교수가 발제를 진행했다. 토론회 주제는 ① 재외선거 우편투표 운영과 현황: 주요 OECD 국가사례를 중심으로, ②에스토니아 인터넷투표 도입사례로 본 선거의 원칙에 관한 재고찰이며, 토론자로는 이정진 국회 입법조사처 정치의회팀장, 고상구 세계한인총연합회 회장, 강호성 중앙선관위 재외선거팀장 등 3명이 참여했다.
이번 토론회는 해외에 거주하는 재외선거에서 불편을 겪고 있는 재외동포와 한인회장이 온라인(ZOOM)으로 참여하여 재외선거에 대한 의견을 듣는 시간을 가졌으며, 토론회 전 과정은 재외동포청 유튜브 계정(동포 ON)을 통해 온라인으로 생중계됐다.
토론회에 참석한 재일동포는 “재외선거에 참여하려면 본인 확인을 위해 일본 정부에서 발급한 외국인등록증을 제시해야 한다”라면서, “외국인등록증은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적 역사를 담고 있는데 재외선거를 위해 외국인등록증을 요구하는 것은 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한민국 정부에서 발급한 여권을 본인 확인 증명으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했다.
독일에 거주 중인 또 다른 동포는 왕복 800km를 이동해 투표를 하러 왔지만, 사전등록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선거에 참여하지 못한 경험을 공유하며, “사전등록제도를 없애달라”고 호소했다.
김경협 재외동포청장은 “재외선거 제도 개선을 위한 기술적인 해법은 이미 존재한다”라면서, “선관위와 국회의 의지와 결단만 있으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며 관계 기관의 협력을 촉구했다.
결국 쟁점은 명확하다. 재외선거를 지금처럼 ‘예외적 참여’로 둘 것인가, 아니면 ‘실질적 권리’로 바꿀 것인가. 재외국민은 국경 밖에 거주한다는 이유만으로 민주주의의 주변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우편투표와 전자투표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그것은 재외국민이 더 적은 비용과 더 적은 장벽으로 동등한 시민권을 행사하게 하는 수단이다. 따라서, 논의는 단지 “도입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어떤 방식으로 보안성과 신뢰를 담보할 것인지, 어떤 국가와 지역부터 단계적으로 시범 적용할 것인지, 본인 확인 방식과 사전등록제도는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다뤄야 한다.
재외선거는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몇 퍼센트가 참여했는가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은, 누구에게나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는가이다. 절차가 복잡하고 거리가 멀고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참여율만 탓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비켜 가는 일이다.
민주주의는 가장 가까운 사람만을 위한 체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멀리 떨어져 사는 국민에게도 국가는 닿아야 하고, 그들의 한 표 역시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토론회는 늦었지만 필요한 시작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다시 한번 의견을 듣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제도 변화로 이어지게 만드는 일이다.
참정권은 원칙으로 선언될 때보다, 불편을 줄여 줄 때 더 분명해진다. 재외국민이 ‘투표할 수 있다’라는 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투표하기 어렵지 않다’라고 말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