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의 미래를 말할 때 우리는 흔히 기술혁신, 기후위기 대응, 식량안보 같은 거대한 단어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그 모든 담론의 바닥에는 결국 사람의 문제가 놓여 있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 있어도 그것을 현장에서 다루고, 품종으로 완성하고, 산업으로 연결할 인재가 없다면 농업의 미래는 구호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국립종자원(원장 양주필)이 2026년 운영하는 중장기 실습형 교육과정 ‘육종 아카데미’는 단순한 직무교육을 넘어 우리 농업의 기반을 다지는 중요한 시도로 읽힌다.
국립종자원은 대학·연구소·기업을 연계해 작물의 육종 실무 능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육종 아카데미’를 운영한다고 밝혔다. 육종(breeding)은 농작물의 유전적 성질을 이용하여 이용 가치가 높은 새로운 작물을 만들어내거나 개량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농업의 시작점이자, 미래 농업의 품질과 경쟁력을 좌우하는 가장 기초적인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아카데미는 채소, 화훼, 식량작물을 대상으로 하며, 육종목표 설정에서부터 다양한 육종방법의 적용, 계통육성, 선발, 특성 조사, 품종등록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포함한다. 교육은 국제종자생명교육센터 실습장과 실제 육종 현장에서 7개월간 실습 중심으로 진행되며, 국내 선진 육종기업 탐방도 포함된다.
새로 개설되는 『채소육종전문교실』과 『옥수수육종전문교실』은 각각 고추와 옥수수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화훼육종기술심화』 과정은 수국과 백합을 대상으로 분리와 교배육종을 직접 실습하는 심화 교육으로 진행된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 교육이 단지 행정기관의 일방적 공급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번 과정은 산·학·관·연 관계자 간담회 등 현장의 의견을 반영해 기획되었다. 특히, 『화훼육종기술심화』 과정은 직장인들의 현실을 고려해 주말 과정으로 편성되었다. 교육이 현장의 수요를 따라갈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제도가 된다는 점에서, 이러한 운영 방식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오늘날 농업은 더 이상 경험과 감에만 의존하는 산업이 아니다. 유전적 특성에 대한 이해, 품종개량의 정밀성, 산업 현장과의 연결 능력이 함께 요구되는 고도 전문영역이다. 종자산업은 그 중심에 있다. 좋은 종자는 좋은 농업의 출발점이며, 좋은 품종은 생산성과 품질, 시장성, 나아가 국가 농업 경쟁력까지 좌우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종자와 육종을 농업의 주변부처럼 다루어 온 측면이 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기초가 무너지면 산업 전체가 흔들린다.
국립종자원 김기연 국제종자생명교육센터장이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육종 등 직무에 맞는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실습 중심의 교육프로그램을 기획·운영 중”이라고 밝힌 것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론을 많이 아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이론을 현장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사람이다. 농업과 생명산업의 경쟁은 결국 현장에서 작동하는 기술력의 경쟁이며, 그 기술력은 사람의 손과 눈, 판단과 경험을 통해 길러진다.
농업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은 거창한 선언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람을 길러내는 일, 기술을 현장에 뿌리내리게 하는 일, 산업의 기초를 조용히 단단하게 만드는 일에서 시작된다. 이런 의미에서 국립종자원의 ‘육종 아카데미’는 하나의 교육과정을 넘어 우리 농업이 어디에 힘을 써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신호다.
종자는 작지만, 그 안에 담긴 가능성은 작지 않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현실로 바꾸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지금 우리 농업에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런 사람을 길러내는 긴 호흡의 투자다. 실습 없는 인재 양성은 공허하고, 현장과 단절된 교육은 오래가지 못한다. 국립종자원의 이번 시도가 우리 종자산업과 생명산업 전반의 인재 생태계를 넓히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교육 신청은 3월 18일부터이며, 자세한 내용과 일정은 국제종자생명교육센터 누리집(https://hrd.seed.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